“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27
연민과 단호함으로
눈을 감고 오늘 복음의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군중들과 함께 걷는 예수님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 연민, 슬픔, 사랑 그리고... 고요한 결심.
예수님은 늘 군중과 함께 계셨지만, 사실 누구보다 외로운 분이셨다. 그분은 군중이 자신을 따르는 이유를 잘 알고 계셨다. 병이 나았기 때문에,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희망의 대부분은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내 삶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기대'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루카 복음에서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시는 긴 여정 중에 일어난다. 이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을 향한 여정이다. 군중은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지만,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길의 본질을 아직 모른다. 군중의 믿음은 아직 자기중심적 기대에 머물러 있었다. 본회퍼는 이것을 "값싼 은총"이라 했던가. 그저 축복만 원하는 신앙 말이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다 아셨다.
그래, 바로 내 마음도 다 아셨구나.
그럼에도 군중도 나도 버리고 싶지 않으셨구나.
그래서 돌아서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시며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구나.
이제야 오늘 복음이 이해가 된다.
"돌아서서"라는 표현 앞에서 나는 멈췄다. 이것은 옛 예언자들이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 사용하던 자세였다. 예수님의 단호함은 냉정함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다. 예수님은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우리와 대면하신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지만,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으신다. 편안한 환상 속에 남겨두기보다, 진리로 초대하신다. 이 초대의 말씀,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미워하다"는 말이 충격적이지만, 이것은 히브리적 표현법으로 절대적 거부가 아니라 상대적 우선순위를 나타낸다. 예수님은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한 사랑이 모든 다른 사랑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처형 도구였던 십자가를 언급한 것은 세상의 가치와 권력에 저항하며 그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잘 헤아려 보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감정적인 열정으로만 예수님을 따르려는 군중에게, 그리고 나에게 "이 길은 전 인생을 건 여정이다. 정말 마음이 준비되어 있느냐?" 하고 묻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순간의 열광'보다 '깊은 의식'을 원하신다.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를 원하시기에 우리의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랑을 요구하신다.
오늘 복음을 처음 읽을 때는 단호한 예수님의 말씀에 순간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과 만나고 나니 오히려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의 중심으로 불러들이는 초대라는 걸 알게 된다. 마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나는 너희가 나를 따르는 이유가 단지 기적이나 위로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너희가 나를 닮아 자유롭게, 두려움 없이, 사랑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단호한 말 속에는 우리를 온전히 사랑의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간절함이 숨어 있다. 이 말씀은 거절이 아니라, 깊은 사랑의 훈련으로의 초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