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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은, 모든 것을 버려서, 모든 것을 얻는 사람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05 조회수55 추천수1 반대(0) 신고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33).”

1) 식구들과 자기 목숨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식구들은, 실제 식구들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식구들을 버리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끝까지 식구들을 사랑해야 하고, 식구들과

함께 구원과 생명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식구들은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영적 동반자입니다.>

‘자기 목숨’은 육신의 목숨을 가리키는 말이고, ‘미워하다.’

라는 말은 집착과 탐욕을 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4-25)”

2) 현세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은,

9장에 있는 다음 대화에 연결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1-62)”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

어떤 사람은, 주님을 따르고 싶다는 소망은 품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는 없는 사람입니다.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먼저’ 하겠다는 그의 말은,

작별 인사를 한 다음에 금방 다시 돌아오겠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일은 ‘나중에’ 마음이 내키면 할

것이고, 지금은 그냥 가족들에게 돌아가겠다는 뜻입니다.

<언제 되돌아올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긴 하지만, 현세적인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예수님만’ 따르는 일입니다.

한눈팔아도 안 되고, 다른 생각을 해도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에는

실제로 너무나도 많은 걸림돌들이 있습니다.

그 걸림돌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도 십자가입니다.>

3) ‘탑을 세우는 일’에 관한 말씀은,

“끝까지 전력을 다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을, “마칠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멈추는 것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은 사람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에’ 남아 있거나, 둘 중 하나만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 근처까지만 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안’이 아니면 ‘밖’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아니면 ‘영원한 멸망’입니다.

4) 전쟁을 하려고 하는 두 임금에 관한 말씀은,

“하느님께 맞서지 마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온 세상 만물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인간이 감히

맞서는 것은,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패배도 아니고,

굴복도 아니고, 항복도 아닙니다.

승리자이신 하느님 편에 서는 일, 즉 승리에 참여하는

일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를

“심판이 닥치기 전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평화 협정을 청하라는 말씀은,

늦기 전에 지금 회개하라는 뜻이 됩니다.

5)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는 말씀과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는 말씀은, ‘같은 가르침’입니다.

구원을 방해하기만 하는 쓸데없는 것들을 모두 버려야만

정말로 중요한 구원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과 생명을 얻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모든 것을 버려서,

모든 것을 얻는 생활이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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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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