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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의 기쁨 “죄인의 회개; 회개가 답이다”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06 조회수4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11.6.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로마14,7-12 루카15,1-10

 

 

하느님의 기쁨

“죄인의 회개; 회개가 답이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27;1,14)

 

복잡하고 힘들 때는 옛 자작시집을 펼쳐봅니다. 이 시들이 저에게는 참 좋은 회개의 표징들이 됩니다. 사실 눈만 열리면 곳곳에 널려 있는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오래전 <국화꽃>이란 시가 흡사 회개한 영혼을 상징한다 싶습니다.

 

“작아도 그 청초함과 향기는 

 비할 바 아니다

 크기와 자리는 전혀 문제가 아니구나

 

 작디 작은 송이송이 

 샛노란 국화꽃 무리들

 꼭 노오란 별무리 은하수 같다

 

 늦가을 매서운 된 서리에 

 가을 꽃들 다 졌어도

 홀로 청초하다

 

 그윽한 향기 

 멀리멀리 퍼진다

 꿈꾸듯 피어난 샛노란 사랑이다”<2000.11.16.>

 

진리의 빛입니다. 진리는 세월의 풍화작용을 겪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여 한결같이 빛을 발합니다. 회개의 여정에 항구할 때 국화꽃처럼 늘 아름답고 청초한 영혼입니다. 회개를 통해 참나를 알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입니다. 회개하라고 연장되는 우리의 날들입니다. 살아 있을 때 회개이지 죽으면 회개도 없습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궁극의 답도 회개뿐입니다.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습니다. 끊임없는 회개가, 회개라는 영적 효소가, 악취나는 <부패인생>을 향기로운 <발효인생>으로 바꿔줍니다. 회개와 더불어 겸손이요 참나를 아는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가 소개되기 전 서두의 구절이 분위기의 배경을 이룹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 들었다.’

 

주님을 찾는 가난한 영혼들을 상징하는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이를 불평하며 투덜거리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는 은전>의 비유입니다. 이미 회개한 세리와 죄인들이요 회개해야할 무지에 눈멀어 마음 완고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잃은 양을 찾고 기뻐하는 이는, 잃은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이는, 그대로 예수님을,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다음 결론같은 말씀이 예수님의 기쁨, 하느님의 기쁨을 반영합니다. 감동적인 결론 대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한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죄인의 회개에 기뻐하는 <하느님의 기쁨>에 즉시 회개하여 동참하라는 간곡한 주님의 호소입니다. 당대 의롭다 자부하는 진짜 죄인들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회개하여 하느님의 기쁨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문제도 답도 내안에 있습니다. 바로 문제의 답은 회개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도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것인데, 우리 모두가 주님께 속한 한가족의 형제자매들인데, 누가 누구를 심판하거나 업신여길 수 있는지 물으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진짜 대죄는 자기에 절망하는 것, 타인을 무시하는 것 둘입니다. 자살에 이르게 하는 절망이요, 타살에 이르게 하는 무시의 업신여김입니다. 회개한 영혼들에게 뒤따르는 주님을 닮은 겸손과 온유, 존중과 배려, 공감과 연민, 자비와 지혜입니다. 

 

회개도 참 중요하고 필요한 항구한 훈련입니다. 회개의 일상화, 회개의 생활화, 회개의 습관화를 위해 기도와 노동과 공부가 조화와 균형을 이룬 회개를 시스템화한 수도원의 일과표가 늘 깨어 회개하는 삶에 얼마나 소중하고 유익한 수행인지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수도원과 똑같은 일과표는 아니더라도 회개의 일상화를 이뤄주는 각자 삶의 자리에 적절한 구체적 일과표는 너무 중요합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다음 말씀이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의 일상화를 이루어 주며 회개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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