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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7일 수원교구청 묵상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07 조회수60 추천수2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 대담함과 영리함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수님은 때로는 바리사이들에게때로는 군중에게때로는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나오늘은 제자들을 대상으로 하시며주님의 집사로서 짊어져야 할 책무에 관한 가르침을 전해주십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집사는 자기의 세상이 갑자기 마감되어감을 직감합니다판결의 날이 다가와지위와 명성을 모두 상실할 위기와 함께 물질적인 생존이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사 일을 그만둘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위기에 처한 집사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생존을 보장하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빠르게 그리고 대담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그리고서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 둘을 불러 채무의 일부를 탕감해주고서는훗날 그 혜택을 보고자 합니다집사의 약삭빠른 행동을 보고서,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유 이야기의 집사는 처음부터 불의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사람입니다부자 주인이 들은 소문곧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이후 그가 보인 행동결코 의롭다고 말할 수 없는 행동 역시 이 소문이 소문이 아니라 사실임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따라서 주인이 칭찬하는 대상은 집사의 이 교활하고 오만한 행동이 아니라시대의 징표를 읽고 대처할 줄 아는 지혜와 능력일 것입니다지금 집사는 마지막 시점주인이 셈을 요구할 시간 앞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비유 이야기를 통해서예수님은 앞날을 보장하기 위해 남아 있는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집사의 대담함을 강조하십니다집사처럼 제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며 셈을 요구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늘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또한제자들은 주님이 몸소 자신들의 잘못을 탕감해주실 수 있도록자신들에게 빚진 사람들만큼은 탕감해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웁니다이때 채무자들이 하느님께 빚을 진 사람들이라면이웃 형제들을 위해 그 빚을 탕감해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하는 마음도 늘 지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일에서 자기의 물질적 미래를 보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영리함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그러나 세상 사정이 아니라 하늘 사정일 때는 문제가 전혀 다릅니다빛의 자녀들곧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빛의 나라가 오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구원 문제에서 영리함을 구사할 기회와 공간을 찾지 않습니다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따라서 그들은 세상의 자녀들이 자랑하는 세상 사정에서의 영리함을 본받아남아 있는 시간 동안 하늘 사정에 관한 행동을 보이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다소 예외적인 비유 말씀을 통하여어떤 자세로 주어진 책무에 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무엇보다 먼저 책무 수행을 마지막 때를 맞이하는 자세로 임하고세상 사정에서의 영리함을 잘 활용하여 하늘 사정을 희망하고 관리하는 데 적용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오늘 하루가정이나 사회나 신앙생활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에 성실함을 보이는 가운데내가 세상 사정에서 발휘하는 대담함과 영리함을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하느님 나라 건설에 일조하는 제자로서의 삶에 부족함이 없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6,1-8: 약은 집사 

 
오늘 복음에 나오는 집사는 교활하고 불의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횡령하였고, 주인에게 발각되어 해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발한 수단을 동원한다. 빚진 자들의 채무를 줄여 줌으로써, 장차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전망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집사의 불의를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칭찬하신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8절) 세상의 사람들은 일시적인 이익과 보장을 위해서도 온갖 꾀와 수단을 다 동원한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가? 
 
사도 바오로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1코린 4,1)으로 부른다. 우리가 받은 생명, 은총, 시간, 재능은 모두 주인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신 것은 그 재물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의 종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Sermo 359) 우리가 맡은 것을 잘 관리하고, 그것을 통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집사가 된다. 
 
이 비유에서 주님은 다가올 일을 내다보는 지혜를 배우라고 하신다. 집사는 해고 이후를 내다보고 준비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 삶이 끝난 후에 맞이할 하느님의 나라를 늘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권고한다. “세상일에는 그렇게도 기민하고 영리하면서, 어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게으른가? 영원한 것을 위해 잠시의 것을 사용하라.”(Hom. 19) 우리의 시간과 재능, 재물을 영원한 목적, 곧 사랑과 구원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늘 창고에 쌓이는 보물이 된다(마태 6,20 참조). 
 
우리는 언제 주님 앞에 서게 될지 모른다. 그날은 도둑처럼 찾아온다(1테살 5,2). 그러므로 신앙인의 삶은 늘 지금 여기에서 준비하는 삶이어야 한다. 주어진 순간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이미 구원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 동안 하느님 앞에서 자유로이 행한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1021항)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내일의 계산이나 세속적 보장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충실히 살고 있는가이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께 맡겨진 집사직임을 기억하자. 불의한 집사가 미래를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내다보며 지금 여기서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늘 깨어 준비하는 삶이 될 때, 주님께서 오실 그날 우리는 참으로 충실한 집사로서 칭찬을 받을 것이다. 


전삼용 신부님_잘 산 사람들은 잘 죽는 법도 알았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루카 16,1-8)에서 우리는 '불의한 집사'라는 당혹스러운 비유를 듣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 해고 통지를 받은 집사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주인의 빚을 탕감해 줍니다.
놀랍게도, 주인은 이 집사를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그의 부정이 아니라, '해고'라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절박하게 움직인 그의 '영리함'입니다. 
 
이 집사와 정반대인 인물이 '부자 바보'(루카 12장)입니다. 둘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약삭빠른 청지기는 심판이 곧 온다고 믿었고, 부자 바보는 더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청지기는 '해고 통지서'를 받자마자, 자신에게 남은 '불의한 재물'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부자 바보는 '해고 통지서'(죽음)를 상상도 못 하고 재물을 쌓아두다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심판 앞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라고 한탄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너는 더 이상 관리인 노릇을 할 수 없다."라는 '해고 통지서'를 받을 것입니다.
이 통지서를 미리 받아들고 삶을 바꾼 '영리한 집사'들이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죽음의 상인'이라 불렸습니다.
1888년, 그의 형이 죽었을 때 한 신문이 그가 죽은 줄 알고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 라는 부고 기사를 냈습니다.
자신이 '죽음의 상인'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한 그는, 복음의 집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해고 통지서'를 미리 읽은 것입니다.
그는 즉시 유언장을 수정하여, 자신의 '불의한 재물'(전 재산 94%)을 기부해 '노벨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현세의 평판을 '인류의 은인'이라는 영원한 유산으로 바꾼, 가장 영리한 집사였습니다. 
 
1912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메이시스 백화점 소유주인 이시도르와 아이다 스트라우스 부부가 있었습니다.
"여성과 아이들 먼저!"라는 외침 속에서 아이다는 구명보트 탑승을 권유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 이시도르 곁에 남았습니다. 이시도르 역시 "다른 남자들보다 먼저 타지 않겠소." 라며 거절했습니다.
아이다는 남편의 팔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함께였어요.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소."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갑판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자산은 '함께 죽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마지막 재산을 '영원한 사랑'과 '부부의 신의'라는 영원한 가치와 맞바꾸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였을지 몰라도, 그들은 영원을 위해 가장 영리한 선택을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극적인 '해고 통지서'를 받아야만 영리해질 수 있을까요?
성 베네딕토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두어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매일 스스로에게 '해고 통지서'를 발부하는 '빛의 자녀들'의 영리함입니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비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죽을 수 있다고 믿을 때, 생명은 물론이요 내가 움켜쥔 이 재물, 이 명예, 이 자존심마저도 곧
사라질 '불의한 재물'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병(ALS)'이라는 '해고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나는 내 죽음을 내 마지막 프로젝트로 삼겠네."라고 결단합니다.
그는 자신의 '불의한 재물', 즉 곧 사라질 '육신'과 '남은 시간'을 아낌없이 '사랑'과 '가르침'으로 베풀어 '영원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는 제자 미치 앨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아. 하지만 죽는 법을 배우면, 비로소 사는 법을 배우게 되지." 죽음이라는 '해고 통지'는 무엇이 '불의한 재물'이고 무엇이 '영원한 가치'인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요?
'오늘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 질문은 우리가 '죽음의 상인'으로 남을지,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 부부로 남을지 결정하게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으로 영리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음이 이득입니다."(필리 1,21)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만 울고 나머지는 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 우리만 웃고 나머지는 울면 그것이 잘 산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잘 사신 분들은 항상 잘 죽는 법을 알았습니다. 


이병우 신부님_"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루카16,8) 

 
'영리한 대처!' 
 
오늘 복음(루카16,1-8)은 '약은 집사의 비유'입니다. 
 
비유에는 전하는 메시지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복음인 '약은 집사의 비유'를 드러난 글자 안에서만 바라보면, 그리고 세상 기준의 눈으로만 바라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약은 집사의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는 비유의 끝 말씀에 드러나 있습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16,8) 
 
오늘 복음인 약은 집사의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세상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영리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빛의 자녀들인 하느님의 자녀들도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영리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영리하게 잘 대처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 일 지 몰라, 늘 깨어 준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임박한 현세적 종말론 신앙'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언제나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아합 임금처럼(1열왕21,1-29 참조), 요나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처럼(요나3,1-10 참조), 우리도 지금 정신을 차리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영리한 대처이며, 오늘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로마15,16) 
 
내가 먼저 회개하고, 나의 회개를 너와 세상에도 전합시다! 
 

(~ 2열왕6,2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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