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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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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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13 | 조회수65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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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감사합니다. 덕분이에요. 좋았습니다. 사랑해요. 미안합니다. 제 탓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존경합니다.” 등의 말은 어떤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정답은 ‘뻔한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평소에 이런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당연하고 뻔한 말을 듣고 싶어 하기에, “고맙다는 말도 안 해.”라면서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뻔한 말이지만, 따뜻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 뻔한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자기 가치를 밖으로 잘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치 때문에 사람들은 좋아하고 또 함께 하려고 합니다.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요? 뻔한 말의 반복에서 나의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뻔한 말이지만 따뜻함과 진정성을 담아서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만큼 이 세상도 따뜻하고 진정성 넘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질문합니다. 즉, ‘시기’에 관해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가시적이고 정치적인 사건, 또는 극적인 종말론적 현상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그들의 기대대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루카 17,20) 하느님의 나라는 그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외적인 제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영적 실재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현존과 활동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분 말씀에 맞춰서 생활하는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존재하게 됩니다. 이미 온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는 어떠한 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하느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느님 나라의 따뜻함과 진정성이 넘치는 모습을 우리가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뻔하다면서 그 모습을 외면하게 되면, 하느님의 나라에 사는 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거짓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고(루카 17,23), 영광에 앞선 고난의 길(루카 17,25)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오늘 우리 가운데 이미 온 하느님 나라를 충실히 살아내는깨어있는 기다림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신중하되 천천히 하라. 빨리 뛰는 것이야말로 넘어지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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