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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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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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14 | 조회수126 | 추천수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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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아주 소중한 묵주 반지가 있습니다. 2018년에 어머니의 십자가 목걸이를 녹여서 만든 묵주 반지입니다. 그 반지는 단순한 묵주 반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신앙과 사랑이 녹아 있는 유품이자, 제 사제 인생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도 몇 번 잃어버린 적이 있었지만, 잘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제관에도, 집무실에도, 성당 구석구석을 다 뒤졌지만, 흔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체념이 들 무렵, 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 책장 위에서 묵주 반지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다소곳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감사와 감격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비유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잃어버려도 다시 찾게 하시고, 멀어져도 다시 품어 주십니다. 우리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하느님의 손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제 삶은 감사로 엮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맡겨 주셨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는 언제나 함께할 사람을 보내 주셨습니다. 건강이 완전하지 않아도 새벽마다 눈을 뜨게 하시고, 산책하며 기도할 수 있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유행성 출혈열과 다리 골절의 고통을 겪었을 때도,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매일의 삶은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김길수 교수의 글 「성삼문의 죽음과 김대건의 죽음」은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성삼문은 조선의 충신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 형장에서 그가 남긴 절명시에는 인간의 허무가 서려 있습니다. “둥둥둥 북소리 울려, 내 목숨을 재촉한다. 머리 돌려 바라보니 해가 지려 하누나. 저승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내 어느 집에서 묵어갈까.” 그의 시는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의 의로움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끝은 허무의 어둠이었습니다. 반면 김대건 신부님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환란과 고난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있지 않으니, 환란의 의미를 생각해서라도 주의 계명을 지켜라.” 그리고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간다. 이제 환란도 고통도 없는 하느님의 기쁜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성삼문의 죽음은 인간의 신념으로 끝났지만, 김대건의 죽음은 하느님의 약속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는 허무였고, 다른 하나는 새출발이었습니다. 믿음의 유무가 생명의 끝을 ‘종말’로 만들기도 하고, ‘시작’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내 남편, 내 자녀, 내 집, 내 사명’이라 부르며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 맡겨진 것들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때 슬프고, 물건을 잃을 때 화가 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잠시 빌려주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반지를 통해, 저는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은 소유가 아니라 ‘기탁(寄託)’입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에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나누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간다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온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오늘 하루, 잃어버린 것을 통해 되찾은 믿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서 다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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