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AI이 아니라, 기도가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15 조회수4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11.15.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지혜18,14-16;19,6-9 루카18,1-8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AI이 아니라, 기도가, 믿음이, 주님이 답이다”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시편105;3ㄴ-5ㄱ)

 

오늘 화답송 시편이 참 좋습니다. 만추晩秋의 한밤중 기상하여 침실문 밖에 나서면 맨먼저 눈들어 확인하는 눈에 보이는 삶의 좌표, 늘 거기 그 자리의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과 하늘 위 <북두칠성>입니다. 불암산과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다시 새롭게 감사와 기쁨으로 시작하는 정주의 수도생활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AI(인공지능)이 아니라 기도가, 믿음이, 주님이 답입니다. AI가 우상이 된 세상, 저는 기도에 대해, 믿음에 대해, 주님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려 합니다. AI에 지배당하거나 이용당하지 않고 잘 분별하여 활용할 수 있는 것도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눈부신 기술발전과 더불어, 아니 한발 앞서 가야할 기도입니다. <사랑학>은 물론 <기도학>과 <신비학 >이란 과목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인들은 거의가 기도가 대가들이었고, 이젠 모두가 기도의 대가들이 되어야 할 작금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해 <탈성장>만이 답인 시대에 참으로 기도를 통한 영적혁명인 회개와 영성의 심화가 절박합니다.

 

기도와 삶입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대로 기도합니다. 삶의 꼴을 형성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과 생명과 사랑의 소통이자 일치의 친교중에 살게 하는 기도입니다. 나중에 주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때도 기도한 얼굴로 당신을 닮았는지가 판단의 잣대가 될 것입니다. 

 

사실 나중에 남는 얼굴은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날로 주님을 닮아 익어가는 <성화의 여정>에 기도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바로 오늘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의 재판관의 비유에서 우리는 기도의 모범이자 기도의 대가인 과부를 만납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지만 그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직접적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not to lose heart)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to pray always)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오늘 비유중 주목되는 말마디가 “올바른 판결”입니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재판관에게 줄기차게 <올바른 판결>을 졸라대는 과부의 끌질긴 자세를 배우자는 것입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어느 고승의 말대신 저는 “기도하다 죽어라!” 말하고 싶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지만 저변에는 깊은 신뢰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마침내 재판관의 항복을 받아내니 과부의 승리가 참 통쾌합니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듯이 기도에도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내가 아쉬워서 하는 것입니다. 바로 과부가 그러했습니다. 정말 항구히 간절히 기도하다보면 원하는 것에서 필요한 것 하나만 남게 되고 그것은 그대로 하느님의 뜻과 일치된 것이 되고 올바른 판결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진짜 부자는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진짜 부자입니다. 마침내 <필요한 것 하나!> 하느님임을 깨달아 모실 때 진정 최고의 부자에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답변이 참 통쾌합니다. 우리의 믿음 부족을 질타하는, 단숨에 읽혀지는 주님 친히 말씀하신 대목입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과연 주님의 응답이 없다 실망하거나 낙심하기전 이렇게 간절히 절박하게 항구히 밤낮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했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철석같은 신뢰의 믿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정말 부족한 믿음을 도와달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홍해를 건너 믿는 이들을 구원해 주신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지혜서가 바로 우리가 믿어야 할 주님의 정체를, 기도의 기적을 잘 보여줍니다.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아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정말 실감나는 기도의 기적이자 하느님의 위업입니다.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이런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낙관적이요 긍정적일수 뿐이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철석같은 믿음에서 솟아나는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입니다. 홍해가 장애물이 없는 길이 되듯 하루의 여정은 물론 평생 여정도 그러할 것입니다. 잘 나갈 때 기도는 누구나 잘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진위는 곤경중에 드러납니다. 곤경중에도 가열차게 올바른 응답을 간구懇求하며, 희구希求하며 기도하는 <믿음의 용사들>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의 하느님 신뢰 부족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복음의 결론 같은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에게 주는 화두같은 말씀이자 믿음을 위한 기도에 분투의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도와주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18,8ㄴ).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