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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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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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17 | 조회수117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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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둘째 날은 교구청 인사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교구청에 8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신부님이 오면 아침 미사와 아침 식사를 함께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교구청에 있으면서 손님 신부님을 맞이했는데, 지금은 손님 사제가 돼서 교구청을 방문했습니다. 교구장님과 신부님들이 따듯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이야기를 하였고, 교구장님은 2년 후에 있을 세계 청년대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숙소를 어디에 정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동창 신부님이 있는 본당에서 지냈는데, 지금은 전진상 영성 센터에 머물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흥 5동 본당 신부로 있을 때 전진상 의료원에 있는 분들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명동에 숙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영성 센터 소장님이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기쁜 마음으로 환대하였듯이, 저를 따듯하게 대해 준 교구청 신부님들과 영성 센터 소장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독서에서 90세의 노인 엘아자르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엘아자르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엘아자르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어겨 이교 제사의 음식을 먹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결한 음식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엘아자르는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 떳떳할 수 있습니다. 이교 제사의 음식을 먹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엘아자르의 인품과 덕망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엘아자르는 그러한 제안을 거부하였습니다. 비록 본인은 이교 제사의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많은 젊은이가 엘아자르가 이교 음식을 먹은 것으로 알고 따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교 음식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는 평가와 평판이 문제였습니다. 엘아자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엘아자르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본보기로 남기고 죽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마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음이 열린 자캐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의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던 자캐오가 구원받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으로 구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느님 앞에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과거 때문에 단죄받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반성과 뉘우침으로 미래의 구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을 생각합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생각합니다. 지금 아프고,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와 신앙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친구로,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신앙인들이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지금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늬만 교회요, 겉모습만 신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기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올 한 해를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나의 발자국이 누구와 함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굶주린 이와 함께한 발자국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한 삶이었고, 그 길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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