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송영진 신부님_<자캐오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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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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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18 | 조회수25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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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10)”
1) 자캐오의 이야기에서,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 나오는 세리가 바로 연상됩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3-14).” 자캐오는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회개하고 있었고, 죄에서 벗어나서 구원받기를 희망하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이라는 말은, 자캐오의 ‘구원에 대한 갈망’을 나타냅니다. 그는 예수님을 한 번 구경해 보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회개는 죄인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구원은 예수님께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라는 말은, 군중이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자캐오가 당시 사회에서 소외계층에 속해 있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세관장이었고 또 부자였더라도, 자캐오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죄인 취급을 받는 소외계층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키가 작았다는 말을, 그의 열등감을 상징하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열등감은 직업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자캐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간 일은, 그의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2) 예수님과 자캐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라는 말은, 자캐오가 나무 위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예수님께서 이미 알고 계셨음을, 또 자캐오의 간절한 심정과 희망을 알고 계셨음을 나타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라는 말씀은, 묵시록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자캐오의 이야기를 겉으로만 보면, 자캐오가 자기 집에 예수님을 맞아들인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부르시고 자캐오가 그 부르심에 응답한 이야기입니다.
3)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라는 말은, ‘행동으로’ 회개를 실천하겠다는 뜻입니다. <마음으로는 이미 회개했지만, 이제 행동으로도 회개를 실천하겠다는 것.> 우리는 자캐오가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는지 모르고, 그리고 그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변화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구원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재산에 관해서 자캐오가 한 말은, ‘낙타와 바늘구멍’에 관한 말씀에 연결됩니다(마태 19,23-24). 정황을 볼 때, 자캐오는 전 재산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자캐오를,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일에 성공한 낙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회개를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시는 말씀이고, 또 그가 구원받을 자격을 얻었음을 확인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캐오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공동체’에서 밀어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진실하게 회개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의 자격을 회복했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는, “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왔다.” 라는 뜻입니다. 아무도 구원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구원받기를 희망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하고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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