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참나(眞我)로 깨어 살기 “늘 하느님 안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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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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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24 | 조회수42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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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월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1839) 기념일
다니1,1-6.8-20 루카21,1-4
참나(眞我)로 깨어 살기 “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앞에서”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마태24,42.44)
참 행복, 참 기쁨, 참 매력, 참 아름다움은 정체성을 잃지 않고 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앞에서 순수와 열정의 믿음으로 참나로 살 때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얼마전 경주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정상회의>때 이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선물한 천마총 금관의 복제품에 관한 <금관 외교가 묻은 천년 예술 에밀레종의 지혜>라는 컬럼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한나라의 국격과 품위에 관계된 일입니다.
“금관은 한 사람의 권위를 과시하는 장식에 불과하지만, 종소리는 모두의 염원을 담은 진리의 메아리다. 만약 이번 아펙에서 이 종의 예술성과 명문(銘文)에 담긴 사색을 되새기는 타종행사로 세계정상과 각계대표를 맞이했다면, 단 한번의 울림만으로도 한국문화의 깊이와 품격을 온전히 느끼며, 한류가 세상을 매혹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안병욱, 한겨레2025.11.21. 21면>
높이 3.7m, 무게18,9톤에 달하는 이 범종 에밀레종은 경덕왕이 부왕 성덕왕을 추모하여 발원해 주조를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채 서거했고, 771년 그의 아들 혜공왕 대에 비로소 완성되니 무려 1300년 역사를 지닌 종입니다. 에밀레종의 진정한 가치는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있습니다. 명문 서두와 끝을 소개합니다.
“지극한 도(道)는 형상 너머까지 포괄하므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진리의 소리(大音)는 천지사이에 진동하므로 들으려해도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비유와 상징을 통한 설법으로 진리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고, 신종(神鐘)을 내걸어 해탈로 이끄는 가르침(一乘之原音)을 전한다.”
“듣고 보는 데 모두의 믿음이 가니, 아름다운 인연은 참된 씨앗이 되고, 속을 비운 원만하고 신비로운 형상이 바야흐로 성스러운 자취를 드러내니, 영원한 큰 복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말그대로 에밀레종은 <하느님 종>, <구원의 종> 신종(神鐘)입니다. 명문의 뜻이 심원하고 그 향기 또한 영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한류의 원형이요 수천년동안 면면히 계승되어온 우리 한국인의 깊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정체성입니다.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다산은 물론 옛 현자의 삶도 참 치열하고 섬세합니다.
“떳떳함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매사를 삼가는 간절함에서 나온다. 용기란 흐름을 거스르는 굳센힘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할 때 필요한 힘이다.”<다산>
“그대가 홀로 있을 때, 방구석에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시경> “명(命)을 아는 자는 굳이 기울어진 돌담 아래에 서지 않는다. 도(道)를 다하고 죽은 자는 바른 명이지만, 범죄로 죽은 자는 바른 명이 아니다.”<맹자>
오늘은 베트남의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95-1839)와 116명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18-19세기 베트남에서는 무려 10만명이 순교했다 합니다. 극도의 온갖 고문 중에 순교의 죽음을 당하면서도 믿음의 증인이 된, 참으로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킨 순교 성인들입니다. 목숨을 잃을지언정 결코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117순교 성인들중 96명이 베트남 출신이요 나머지 21명은 유럽의 선교사들입니다. 198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성 안드레아 둥락을 비롯한 116 배트남 순교자들을 시성합니다. 새삼 신자로서의 참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참나의 정체성을 잃고 사는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늘 자주 생각할 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우리는 제1독서 다니엘 예언서에서 바빌론 포로중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킨 지혜롭고 용기있는 아름다운 젊은이,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 넷을 만납니다.
이들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대신 채소와 물만 먹으며 믿음의 정체성을 지킨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특히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하시니 믿음의 정체성을 지키려 혼신의 노력을 다한 이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일화도 참 감동적입니다. 참 신자생활의 모범을 보여주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가진 소유가 아니라 마음을, 믿음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그 인품이 드러납니다. 가난한 과부는 참으로 세상에, 물질에 초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믿음을 세상에, 물질에 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두고 있기에 변함없는 신자로서의 정체성에 이런 홀가분한 초연함에 자유로운 처신입니다. 예수님 친히 과부의 됨됨이를 인정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주면서, 부끄럽게 하면서 ,우리를 회개에로 이끌어 주는 예화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못 보았지만 주님은 과부의 모두를 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외적으로 가난해도 내적으로 참 부요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참나의 순수하고 지혜로운 이탈의 삶을 살았던 과부요, 이 또한 주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은 믿음의 정체성을 지키며 혼신의 힘을 다해 바르게 참나의 삶을 살려는 자들의 배경이 되어 주시며 함께 해 주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시간, 주님은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모두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를 참으로 자유롭고 부요하게 행복한 내적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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