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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바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과 정성이 더 중요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24 조회수62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1-4)”

1) 바오로 사도는 ‘헌금’(성금)에 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총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2코린 8,1-4).”

<이 말에서 ‘특전’이라는 말이 특별히 눈에 뜨입니다.

마케도니아 신자들은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일’을 ‘의무’가 아니라 ‘특전’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일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여러분이 작년부터 이미 실천하기 시작하였고

또 스스로 원하여 시작한 것이니, 이제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 자발적 열의에 어울리게

여러분의 형편에 따라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

열의만 있으면 형편에 맞게 바치는 것은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요구되지 않습니다(2코린 8,10-12).”

<아마도 코린토 신자들 중에는 형편에 맞지 않게,

열의도 없이, 억지로 성금을 내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열의는 있는데 형편이 안 되어서, 성금을 내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한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6-7).”

<바오로 사도는 ‘기쁨’을 강조합니다.

‘받는 기쁨’이 아니라 ‘주는 기쁨’.>

2) 바오로 사도가 한 말을 ‘가난한 과부’의 마음에 대한

설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과부는 ‘동전 두 닢’이라도 봉헌할 수 있음을

기뻐했을 것이고, 봉헌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큰 은총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헌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드렸을 것입니다.

받아서 고마운 것도 고마운 것이지만,

줄 수 있어서 고마운 것이 더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은

실제로 체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그 기쁨으로 헌금을 한다면

헌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3)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에서 ‘다 넣었다.’는

말만 보고서, 가지고 있는 재산을 전부 다 바친 것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바친 것은 ‘전 재산’이 아니라

‘그날의 생활비’입니다.

<물론 그 과부에게는 재산 자체가 아예 없었을 수도 있고,

생활비가 곧 전 재산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생활비’ 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면 부자들 가운데에도

‘생활비’를 전부 다 바친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말은,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바쳤다는 말이 아니라, ‘풍족한 데에서’ 라는 말과

‘궁핍한 가운데에서’ 라는 말입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기쁨 없이

억지로 바쳤기 때문에 예수님의 칭찬을 못 받았고,

그 과부는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으로’

바쳤기 때문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생활비를 다 바친 ‘행위’를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정성을 칭찬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 과부가 마음으로는 다 바치고

싶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일부만 바쳤더라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4) 우리 주변에는 ‘전 재산’을 교회에 봉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과부’의 마음과 정성 그대로,

아무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봉헌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속셈으로 봉헌한 경우도

일부 있을 것입니다(마태 6,1).

주님께서는 사람의 속을 꿰뚫어보시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모릅니다.

따라서 그것은 남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 자신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행위만 보고서

그 사람을 칭찬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전 재산을 바쳤다고 해도, 주님께서 그의 마음속을

보시면서 그를 ‘위선자’ 라고 꾸짖으실 수도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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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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