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성전은 바벨탑이 될 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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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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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25 | 조회수34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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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루카 21,5-11)”
1)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고는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일이 아니라, 사실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서 하느님께 봉헌했을 때, 그때 이미 하느님께서 하셨던 일입니다.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나에게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계명과 규정을 따르지 않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예배하면, 나는 내가 준 땅에서 이스라엘을 잘라 버리고,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별한 이 집을 내 앞에서 내버리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속담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집은 폐허가 되어, 이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몹시 놀라고 휘파람을 불어 대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찌하여 주님이 이 땅과 이 집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자기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 그들의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끌어들여 그 신들을 예배하고 섬겼기 때문이지.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모든 재앙을 그들 위에 내리셨다네.’(1열왕 9,6-9)” 물론 하느님께서는 성전 파괴 예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축복 말씀을 먼저 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내 앞에서 한 기도와 간청을 들었다. 네가 세운 이 집을 성별하여 이곳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니, 내 눈과 내 마음이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 네가 네 아버지 다윗이 걸은 것처럼, 내 앞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바르게 걸으며,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실천하고 내 규정과 법규를 따르면, 나는 너의 왕좌를 이스라엘 위에 영원히 세워 주겠다(1열왕 9,3ㄴ-5ㄱ).” 성전 파괴 예고 말씀과 축복 말씀은 모두 조건이 붙어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그 조건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말년에 얼마나 심각하게 타락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우상숭배에 빠졌고, 하느님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1열왕 11,4-9). 그래서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왕이면서, 동시에 그 성전을 스스로 파괴한 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고 말씀’은,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확인하신 말씀이고, 하느님의 경고가 완전히 실현될 것이라고 예고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몇 차례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었는데, 서기 70년에 파괴된 후로는 아직까지 복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성전을 교회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실 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도 조건이 붙어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조건. 예수님의 뜻과 가르침을 거스르면서 막 살아도 무조건 지켜 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건축물이라도 하느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것은 허무하게 무너질 바벨탑이 될 뿐입니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면서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버립니다. 정녕 저희는 당신의 진노로 스러져 가고, 당신의 분노로 소스라칩니다(시편 90,5-7).”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힘’뿐입니다.
3)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종말로, 또는 종말의 재난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는 “종말의 날이 언제입니까?”이고,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는 “종말의 표징은 무엇입니까?”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표징’으로 말씀하신 일들은 루카복음 21장 25절-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11절의 재난들은 종말의 표징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늘 일어나는 재난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종말의 재난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종말도 아니고 종말의 표징도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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