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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25일 수원교구청 묵상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11-25 조회수55 추천수2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성전 파괴

 

오늘 말씀을 담고 있는 루카의 본문은 다소 서툴게 엮인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며, 둘째 부분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제기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으나, 예수님은 직접적인 답은 주시지 않고, 다만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식별하게 해주는 표징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의 파괴에 관한 몇 가지 점들을 묵상해보기로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왜 파괴되어야 했을까? 예수님은 왜 유다인들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자랑하던 성전 건물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하고 예언하신 것일까?

 

사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 파괴에 대하여 두 차례에 걸쳐 설명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루카 19,44에서, 예수님은 이 사건을 당신이 하느님의 구원자 메시아이심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겪어야 했던 징벌로 적시하십니다(지난주 목요일 말씀 참조). 한편, 요한 2,19-22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설명은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 2,19) 하는 다소 신비스러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성전 이외의 다른 곳에 머무시고 현현하실 때가 되었다고 가르치시는 듯합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이 지금까지 하느님의 거처로 간주해 왔던 성전은 사라져야 하고, 하느님은 이제 당신 아드님 안에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한 어조로 일깨워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참되고 새롭고 궁극적인 성전이라는 선언입니다. 부활의 날에 예루살렘 성전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채, 새로운 참된 성전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또는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 전체가 하느님의 새로운 거처인 성전이 되리라는 설명으로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되풀이하고 보완합니다. 바오로의 이 사상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은, 누구의 마음이든, 하느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우선 찾아야 할 장소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찾지 못한다면, 하느님을 영원히 만나지 못할 위기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오늘 예수님은 성전 파괴 예고를 통해서, 파괴 그 자체를 뛰어넘는 새 가르침을 건네주십니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자리하셔서, 당신의 뜻을 자유롭게 펼쳐나가시는 분임을 밝혀주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드려,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그 뜻 실현에 기도와 희생으로 함께 하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복음: 루카 21,5-11: 예루살렘의 멸망 예고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장엄함과 화려함을 보시고, 그것이 언젠가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예언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는 삶의 진정성과 회개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장엄함 뒤에 닥칠 심판과 파멸을 경고하신다(6절). 

 

사람들은 종말의 정확한 시기를 묻지만, 주님께서는 시기를 알려주시지 않고, 대신 표징을 통해 대비하라고 하신다(7-11절). 그 표징에는 거짓 그리스도, 거짓 예언자, 전쟁, 지진, 기근, 환난 등이 포함된다. 이 예고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면 결국 파멸하게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하느님의 예언은 단순한 미래 예보가 아니라, 믿는 이들이 항상 경계하며 회개하도록 깨우는 신적 교훈이다.”(Homiliae in Lucam, 59) 성 아우구스티노 또한 지적한다: “종말의 표징과 환난을 아는 것은, 인간이 두려움에 빠져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믿음의 삶을 충실히 살게 하고, 하느님께 의탁하게 하기 위함이다.”(De Civitate Dei, XX, 12)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삶의 교훈을 준다.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루살렘이 파멸한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기중심적 삶을 살면 우리 역시 파멸할 수 있다. 하느님의 표징에 주의하며 경계해야 한다. 전쟁, 지진, 환난 등의 표징을 보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준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신다. 벌주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지 않도록 초대하신다. 

 

예루살렘의 멸망 예고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우리 삶의 경고이다.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따르며, 회개하고, 기쁨과 사랑으로 하느님 안에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믿음의 삶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이 참으로 구원받은 삶임을 기억하자. 

 

“주님, 저희가 당신의 뜻에 귀 기울이며, 언제나 회개의 마음으로 충실한 삶을 살게 하소서. 마지막 날에도 두려움 없이 당신의 은총 안에 거하게 하소서.” 아멘. 

 

전삼용 신부님_불안하면 아무나 구원자로 보인다 

 

 

영국의 전래 동화 중에 ‘치킨 리틀(Chicken Little)’이라는 아주 유명한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작은 닭 한 마리가 숲을 걷다가 떡갈나무 위에서 떨어진 도토리에 머리를 '콩' 하고

맞습니다.

깜짝 놀란 닭은 생각합니다.

"아니, 머리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다니!

이건 분명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야!" 

 

공포에 질린 치킨 리틀은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만나는 오리, 거위, 칠면조에게 소리칩니다.

"큰일 났어! 도망쳐!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 내가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머리로 맞았어!"

동물들은 그 닭의 확신에 찬 공포에 전염되어, 이유도 모른 채 뒤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공포의 행렬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굴 앞에 앉아 있던 여우(Foxy Loxy)가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 어디 가니?"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요! 왕에게 알려야 해요!" 

 

여우는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왕에게 가는 지름길을 내가 알아. 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면 안전해."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동물들은 여우를 구원자로 착각하고 제 발로 여우 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든 '거짓 공포'가 그들을 포식자의 식탁 위로 배달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예언자들과 사이비 종교, 그리고 세상의 장사꾼들은 '치킨 리틀'의 우화처럼 우리에게 달려와 소리칩니다.

"경제가 무너진다! 전쟁이 난다! 건강이 무너진다! 지금 당장 대비하지 않으면 당신은 끝장이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불안'**을 자극하여 지갑을 열게 하거나, 영혼을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라고 부릅니다.

보이스피싱범들이 전화를 걸어 "당신 아들이 납치됐다, 당장 송금하라"고 소리 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뇌에서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를 자극하면,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전원이 꺼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공포를 주입해야만 사기가 성공합니다. 

 

"이 부적을 안 쓰면 아들이 다친다", "이 헌금을 안 내면 사업이 망한다", "지금 당장 여기로 오지 않으면 지옥 간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불안을 조장하여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그는 100% 여우 굴 앞에 서 있는 사기꾼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협박하여 사랑을 받아내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이 무너지고,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돌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십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도 '공포 조장'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결론은 전혀 다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큰일 났다!

그러니 나를 따라라(돈을 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루카 21,9) 

 

예수님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현실을 왜곡하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무너질 것이고 재난은 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팩트(Fact)'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팩트 너머의 '진리(Truth)'를 주십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8).

진리를 말하는 자는 현실의 비극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평화를 심어줍니다.

이것이 참된 목자의 목소리입니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의 일입니다.

거리에는 "하느님이 분노하셨다! 종말이 왔다!"고 외치며 공포를 파는 자들이 넘쳐났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질려 전 재산을 바치며 여우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병상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던 영국의 은수자 율리아나(Julian of Norwich)는 예수님의 환시를 봅니다.

그녀는 손바닥만 한 작은 개암(Hazelnut) 하나를 보았는데, 주님께서는 "이 작은 것도 내가 사랑하여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흑사병이라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역사에 남을 위대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죄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일들이 다 잘될 것이다

(All shall be well, and all shall be well, and all manner of thing shall be well)." 

 

율리아나 성녀는 재난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재난보다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하는 대신, "하느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니 안심하십시오"라는 평화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목소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상은 끊임없이 '치킨 리틀'처럼 호들갑을 떨며 우리에게 달려올 것입니다.

뉴스는 전쟁을 팔고, 광고는 노후의 비참함을 팔고, 가짜 종교는 지옥을 팝니다.

그들은 대가로 여러분의 돈과 시간을 요구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불안을 주며 대가를 요구하는 자는 장사꾼이고, 평화를 주며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는 분은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지불할 비용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을 불안하게 만드는 모든 목소리를 끄십시오.

그리고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만을 켜십시오.

그 안에 참된 구원이 있습니다. 아멘. 

 

 

이병우 신부님_"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21,6) 

 

'주님께 겸손하게 믿음을 청하자!' 

 

오늘 복음(루카21,5-11)은 '성전 파괴 예고와 재난의 시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종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즘 독서로 듣고 있는 다니엘서의 말씀은 '종말 후의 모습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말씀'입니다. 

 

모든 인간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죽음이라는 종말의 때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또 하나의 종말의 때인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마주하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개의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 다니엘서의 말씀은 이 종말의 때를 생각하며 우리가 지금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정신차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의 신원(성소)으로 돌아가는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본기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는 것.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바꾸는 것.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우리네 삶 속에서 이것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결코 해 낼 수 없는 일로 다가옵니다.

이는 믿음, 곧 십자가 사랑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루카17,5) 라는 사도들의 청원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17,6) 

 

주님께 겸손하게 믿음을 청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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