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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11.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07:32 조회수6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5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몇 년 전, 경주의

왕릉을 찾아갔었습니다.

이 왕릉을 찾아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아마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 행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행사의

이름은 이것입니다.

‘신라 임금 이발하는 날’

매년 하는 이 행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왕릉 벌초 행사입니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자그마치 1,000명 이상입니다.

그만큼 엄청난 규모의 왕릉입니다.

지금 현대인은 묻힐 땅이 없어서

조그마한 봉안당에 안치되는데

말이지요. 이 왕릉의 규모로 당시의

권세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그저 단순히 관광지에 불과합니다.

이 왕릉에 묻힌 왕에게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 왕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큰 왕릉에만 관심 있을 뿐입니다.

죽어서까지 누구는 높고, 또 누구는

낮더라는 계급 자체가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

분명히 다릅니다. 주님께서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도 하느님 나라에

걸맞은 사람으로 사라는 것입니다.

세상 안에서 높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상에서의 상하 관계,

하느님 나라에서는 역전되고 맙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 21,13)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사도행전에서 바오로와

베드로 등이 겪게 될 실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박해가 재앙이 아니라 기회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법정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

할 수 있는 가장 공적인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박해는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의 붕괴도

이끕니다. 신앙 때문에 가장

신뢰하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제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미움받는 원인을 제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이름’ 때

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주십니다.

16절에서는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18절에서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체적 상해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철저한 보호 아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과 구원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영적인 보존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박해 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근거가 됩니다. 지금은 박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많은 유혹이 현대의

박해가 될 것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희망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철저한 보호 아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그대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엾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말 가엾은 것은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에센바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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