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08:50 | 조회수2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사람들로 부터 박해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 다음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증언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무엇을 말할지 걱정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데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인내로서 생명을 얻으라는 말씀하십니다. 인내로 .. 신앙 생활하면서 많은 역경을 격게 됩니다. 세상의 파도는 엄청 세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파고에 나를 맞기어서 영혼이 없이 육적인 감각만이 남아 있게 되어서 살아가는데 그런데 그 육적인 것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겉은 사람이지만 속은 괴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괴물입니다. 이런 세상에 오늘 성무일도 아침기도인지 독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영혼의 향기 안에 머물러 있으려면 수없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땀을 많이 흘려야 합니다. 매 순간 하느님을 눈 앞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이 삶은 죽을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항상성입니다.
항상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생명의 특성 중 하나로, 자신의 최적화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특성이다. 대부분의 생물들은 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일어난다. 항상성은 생명 현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질병이 발생하는 핵심적인 정의 중 하나가 바로 이 항상성이 깨져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항상성이 영구히 깨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을 죽음을 정의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영혼에도 항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항상성은 끝이 없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묵상, 나를 비우고 하느님의 자비를 영구히 청하는 이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부던히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로 부터 버림을 받고 갖은 고초를 격을 것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나를 죽이는 행위입니다. 나에게 찾아오는 필연적인 역경입니다. 신앙은 그와 같이 칼날 위에 서있는 무서운 길입니다. 그런데 무섭다고 한것은 어디까지나 나 혼자 걸어갈 때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수도자들의 생활이 고행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나 혼자 걸어갈때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 순간 기도와 관상, 묵상, 희생과 내어 맞김으로 생을 살아갑니다. 그 안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고 그 고행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천국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면 인내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인내의 과정 속에는 하느님의 무한한 성령의 은총이 같이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데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말할 것을 알려 주겠다는 말씀은 성령께서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오늘 성무 일도의 말씀도 보면 참 ..예수님 공생활 중에는 천방지축이었지만 그러나 사도로 생활하면서 주님을 증언하는 모습은 큰 어른의 모습입니다. 그 안에 성령께서 같이 하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항상 "네"하고 응답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