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11월 28일 수원 교구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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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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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28 | 조회수56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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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사라지지 않는 말씀
오늘 말씀은 어제의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묘사를 바로 뒤따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도성의 파괴를 우주적 재앙으로 묘사하는 유다교의 묵시묵학적 어법을 활용하십니다. 이러한 유형의 어법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복음저자 루카는 종말에 대한 무엇인가를 더 말하기보다는,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의 멸망을 하느님 나라 도래 과정의 결정적인 단계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전의 파괴와 함께, 교회의 시기가 시작되었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 교회의 시기는 다른 무엇이 대체할 수 없는 시기이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나무의 잎을 예로 드시며,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하는 말씀으로 종말의 시기를 스스로 완전하게 깨닫게 될 것임을 일러주십니다. 이 말씀은, 종말에 관한 이 마지막 현상들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펼쳐질지를 알아보는 일보다는, 언젠가는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늘 의식하고 살아갈 것을 권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늘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할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이 세상 어디에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허공을 향해 영원히 말한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종말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 세상의 종말을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영원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의 시간을 넘어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솟아날 희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훗날, 복음저자 요한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때도, 종말을 하느님의 나라라는 희망을 향한 결정적인 단계로 확언하고자 하는 의도가 돋보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대 유다교의 묵시문학적인 사조를 바탕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새로운 시기, 곧 제자들에게 맡겨질 교회의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일러주십니다. 넘어가는 과정은 물론 그 시기에 접어들어서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나, 포기하지 않고 이를 하나씩 하나씩 극복해 나가면서 하느님의 나라 건설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또 다른 또는 예기치 못한 어려운 상황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말씀을 지니신 예수님이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일조하는 과정임을 가슴에 새기며, 힘차게 걸어가는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21,29-33: 나무에 잎이 돋으면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듯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잎이 돋는 것을 비유로 들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흔히 걱정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 것인가이지만, 주님께서는 그 시기를 묻는 대신, 항상 깨어 기도하며 종말을 대비하는 삶을 살라고 요청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여름이 온 줄을 안다.”(29-30절) 하시며, 종말의 징표 또한 알아볼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70년에 파괴되었다. 그러나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주님은 그날이 언제일지 알려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날과 그 시각은 오직 아버지께서만 아신다.”(마태 24,36) 하셨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날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충실히 사는 것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종말에 대한 대비를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세상 끝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며 기다려야 한다.”(De Mortalitate, 26)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종말은 모든 이에게 다가오지만, 각 사람에게는 죽음이 바로 자기의 종말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거룩히 살며 준비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Sermo 97, 1)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종말의 시기를 계산하지 말라: 우리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지를 알 수 없으며,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이다. 개인의 죽음을 종말로 여겨 준비하라: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이 곧 나의 종말이자 심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거룩히 살아야 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라: 주님은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33절) 하셨다.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할 때, 우리는 종말을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으로 맞이할 수 있다.
종말은 두려움의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완성과 주님의 구원에 이르는 희망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 날을 계산하기보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며 주님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삶 전체가 종말론적 삶이 되고, 주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 아멘.
전삼용 신부님-종말의 법칙: 제단이 무너지면, 단두대가 선다
1793년 11월 10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혁명군들이 난입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제단을 박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서진 제대 위에 흙을 쌓아 인공적인 산을 만들고, 그 꼭대기에 그리스도 대신 오페라 여가수를 앉혀 '이성의 여신'이라 칭송했습니다. 그날 그들은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이 되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미신'이라 조롱하며, "이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꿈꾸던 낙원이 도래했을까요? 정반대였습니다. 하느님의 피가 사라진 파리 거리에는 인간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제대가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 **'단두대'**가 섰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먹지 않고 스스로 신이 되려 했을 때,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죽이는 짐승으로 전락했습니다. 제대가 무너진 곳에는 반드시 단두대가 섭니다. 이것이 역사의 법칙이자 종말의 법칙입니다.
제단이 무너지면 왜 세상은 지옥이 될까요? 가톨릭 교리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는 것"(CCC 460)이라고 가르칩니다. 제단은 인간이 자신의 부족함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신적인 존재로 변화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처럼 이 제단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 할 때, 인간은 탐욕과 지배욕의 노예가 되어 타인을 심판하고 죽이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제단이 무너지자 곧바로 카인이 아벨을 죽인 비극이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멸망을 경고하십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겉모습은 화려했으나, 인간이 하느님으로 변화되는 거룩함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참된 제단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라는 단두대로 내몰았을 때, 결국 예루살렘은 돌 하나 남지 않고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은 현대에도 반복됩니다. 미국의 수정 교회(Crystal Cathedral)는 전면이 유리로 된 화려한 건축물과 '긍정의 힘'이라는 설교로 수만 명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십자가와 죄, 고통을 설교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잎은 무성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영광, 성체성사의 깊이가 없는 긍정의 힘은 시련이 닥치자 모래성처럼 무너졌습니다. 영적 능력을 상실한 교회는 결국 파산했고 건물은 매각되었습니다. 제단을 포기하고 인간적인 위로만 찾는 종교의 끝은 공허한 멸망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은 더욱더 성체성사의 신비를 조롱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단 앞에 무릎 꿇는 대신, 돈과 권력이라는 단두대 위에서 서로를 죽이며 스스로 왕이 되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의 제단을 사수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져도, 우리가 이 제단을 지키고 그분의 살과 피 안에 머무르는 한, 세상의 어떤 단두대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제단이 되어주십시오. 그것이 종말을 사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아멘.
이병우 신부님_"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21,31)
'가까이 와 있는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
오늘 복음(루카21,29-33)은 '무화과나무의 교훈'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 다른 나무들에 비해 늦게 잎을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는다는 것은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로 여겨졌습니다. 이렇듯 앞선 복음에서 언급된 종말 전조들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느님의 나라는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의 나라, 곧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는 나라이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죽음 저 너머에서 맞이하게 되는 나라이며,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맞이하게 되는 나라입니다.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잠시 지나가는 여기에서 하느님의 나라 안에 머문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성서 주간'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말씀에 집중하면서 필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주님의 집을 다 짓고 나서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이고, 죄인들이 성전에 들어와 자비를 자청하면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면 멸망하고 성전도 파괴될 것이라고 하십니다.(2역대6-7장 참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합시다! 그래서 이미 우리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 안에 들어가고, 가까이 와 있는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 2역대7,2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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