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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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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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1-29 | 조회수41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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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루카 21,34-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2025년 다해의 마지막 주간 내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종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종말 메시지’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결론 부분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이야기하시기보다, 일상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을 말씀하신다는 점이 인상적이지요.
먼저 종말을 준비하는 우리 마음을 해이해지게 만드는, 그렇기에 특히 조심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방탕’은 뭔가를 누리고 싶고 갖고 싶은 욕망이 내 마음에 가득 들어차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태입니다. ‘만취’는 마음을 무방비로 비워두고 내버려두는 안일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자신이 죄 중에 있음을 알면서도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죄의 어둠 한가운데에 방치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는 그 죄가 주는 순간의 쾌락에 잔뜩 취해서 정말 중요한 하느님 뜻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일상의 근심’은 내가 바라는대로, 내 뜻대로 하려는 교만이 내 마음을 쥐고 흔드는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혹시 내 기대, 내 바람대로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커지지요. 이 세 가지 요소의 공통점은 우리 마음을 해로운 것들로 가득 채워 하느님이 계실 자리, 그분 뜻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다는데에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하느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그분의 사랑에 소홀해지면, 마음이 ‘물러’집니다. 마음이 물러진다는건 ‘예’라고 답해야 할 때 ‘예’라고 하지 못하고, ‘아니오’라고 답해야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것이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죄인지 잘 알면서도 단호하게 배격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하느님 뜻에 맞는 일을 과감하게 실천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끌려다니듯 사는 것이지요. 이처럼 용기도, 결단도 없는 나약한 마음으로는 종말의 때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려면 절박한 심정으로, 치열하게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데, 엉뚱한 것들에 한눈이 팔려있으니 나에게 오시는 주님이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재앙’으로, 나를 옭아매어 멸망의 수렁에 빠뜨리는 ‘덫’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나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으려면 ‘늘 깨어 있어야’합니다. 깨어 있는다는 건 지금 당장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 하더라도 당당하게, 기쁘게 설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종말론적인 삶’이지요.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 기쁨이 되려면 늘 죽음을, 그 이후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엉뚱한 것을 찾다가 생명을 잃지 않도록 먼저 하느님 뜻을 따르기 위해 나 자신을, 내 탐욕과 고집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즉시 행할 수 있도록 나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죽이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은 기도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니 늘 기도 중에 하느님 뜻을 찾으며, 그 뜻을 올바르게 식별할 지혜와 기꺼이 선택할 용기와 꾸준히 실행할 끈기를 주시기를 청합시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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