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12월 8일 수원 교구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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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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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12-08 | 조회수54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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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우리는 성모님의 ‘응답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26-38).”
1)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에페 1,3-6).”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은, 그리고 우리가 선택된 일도,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세워져 있었고,
그때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우연히 일어난 일’이나
‘우발적인 일’은 없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의한 일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도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일이고,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실현된 일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하느님께서 직접 하신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인간의 지식이나 논리로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원죄에 물들지 않게
지켜 주신 것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실
성자의 어머니”로 당신이 직접 선택하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또 ‘죄를 없애시는 분’이 ‘죄 없으신 분’에게서 태어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일을, ‘믿을 교리’로 선포했습니다.
<‘믿을 교리’ 라는 말은, 단순하게 표현하면 “우리가 그냥
그렇다고 믿는 신앙의 진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2)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성모님 자신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고,
성모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하느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니,
적어도 그 일 자체에 대해서는 성모님을 본받자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성모님의 ‘응답의 삶’입니다.
복음 말씀의 기록만 놓고 보면, 성모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음을 알게 된 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입니다.
따라서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응답의 삶’을 사신 것은
그때부터 시작된 일인데,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신 것은,
‘어린 시절부터’ 라고 교회의 전승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고, 원죄 없이 잉태되시고
태어나셨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평생 죄에서 보호를 받은
것은 아니고, 성모님 쪽에서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셨고, 하느님과 함께 사셨기 때문에,
‘죄 없으신 분’이 되셨습니다.>
3) 바오로 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모두 ‘세상 창조
이전에’ 선택되었지만, 성모님처럼 원죄 없이 잉태되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원죄에 물든 채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도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 라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에페 1,7).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죄인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로 창조하셨고,
또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유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는 큰 은총이면서,
동시에 ‘덫’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숙제입니다.
충실한 신앙인은 자유의지 ‘덕분에’ 구원을 받게 되지만,
자유의지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을 얻지 못하고
탈락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선택은 각자 자신이 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각자에게 있습니다(로마 2,6-7).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이병우 신부님_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
'깨끗한 영혼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나자렛 처녀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로 간택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이 큰 축일은 '천주의 성모이신 마리아(1.1)',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8.15)',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와 함께 중요한 '성모님의 핵심 믿을교리'입니다.
성모님께서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품고 낳으실 모태이기에 당연한 믿을교리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루르드의 성모님 발현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이 믿을교리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나자렛 처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십니다. 죽음과도 같은 이 엄청난 선택을 마리아는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품고 낳으시는 태가 됩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하신 일,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대림시기'입니다. 구약의 4천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림초 4개 중에 2개가 불을 밝혔습니다. 세상 구원을 위해 오시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태어나시도록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영혼을 깨끗이 정화해야겠습니다.
'거룩한 미사와 고해성사(판공성사)'를 통해 죄에 물들어 있지 않은 영혼이 되어, 메시아이신 구세주께서 내 안에 태어나시게 합시다!
그리고 하느님 구원 사업에 도구로 부르시는 주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합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2역대36,23)
전삼용 신부님_성모께서 원죄 없음을 믿지 않으셨으면, 예수님을 잉태하실 수 없으셨다
[도입] 야수는 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 (양심의 장벽) 우리가 잘 아는 동화 『미녀와 야수』에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흉측한 야수는 아름다운 벨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단순히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벨 앞에 서면, 짐승 같은 자신의 추악함이 극명하게 비교되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야수는 괴로워하며 어둠 속으로 숨습니다. "당신은 너무 빛나고 나는 너무 더럽소. 야수는 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없소." 이것이 바로 '양심'의 작용입니다. 더러운 것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것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더럽다고 느끼는 한, 거룩한 분이 내게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어도 내 양심이 "너는 자격이 없어!"라고 소리치며 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입니다.
[전개 1] 거룩함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인간 성경을 보십시오. 하느님의 거룩함을 체험한 인간의 첫 반응은 언제나 '뒷걸음질'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를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순간, 거룩하신 하느님을 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하느님을 품는다는 것은 불에 타죽는 것과 같은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을 자신의 태중에 모시겠다고 '예'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만약 마리아가 자신의 영혼에 아주 작은 죄의 얼룩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혹은 자신을 그저 평범한 죄인이라고 여겼다면, 베드로처럼 이렇게 외쳤어야 마땅합니다. "주님, 저를 떠나십시오! 감히 누추한 제 몸에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모실 수 없습니다. 이는 신성모독입니다!"
[전개 2] 믿음은 "내가 누구인가?"에 답하는 것 하지만 마리아는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마리아가 교만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통해 자신의 '원죄 없음'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Kecharitomene)"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너는 죄가 하나도 없이 은총으로만 꽉 차 있다"라는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전합니다. 이 침묵의 시간 동안 마리아의 내면에서는 치열한 식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나는 연약한 인간인데, 하느님께서 나를 완전한 은총 덩어리라고 부르시는구나. 죄가 없다고 하시는구나.'
마리아는 자신의 감정이나 인간적인 판단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깨끗하다고 하시면, 나는 깨끗한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양심의 가책이나 두려움 없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며 거룩하신 분을 자신의 태중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은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대로 '내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이 '원죄 없는 깨끗한 그릇'임을 믿으셨기에, 예수님을 담아내는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자신이 깨끗함을 믿지 못하면, 결코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개 3] 향심기도: 나를 규정하는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는 연습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체성사를 통해 매일 예수님을 모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죄인', '부족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살아갑니다. 내 안의 죄의식(야수)이 하느님(미녀)을 온전히 모시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의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선택하는 훈련, 바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입니다. 향심기도는 우리가 성모님처럼 "나는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라는 믿음을 연습하는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첫째, 하느님 안에서의 내 정체성을 담은 '거룩한 단어'를 하나 정하십시오. '예수', '사랑', '거룩함', '현존' 등입니다. 이 단어는 "나는 당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라는 내 믿음의 동의입니다.
둘째, 기도를 시작하면 온갖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너는 죄인이야.", "너는 이기적이야.", "네가 무슨 기도를 해." 이런 생각들이 뱀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때 그 생각들과 싸우거나 대화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셋째, 그저 부드럽게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십시오. 생각을 끊고 거룩한 단어를 떠올리는 행위는 이런 고백과 같습니다. "아니야,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아.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어. 하느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했어. 나는 주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야." 이것이 성모님이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신 과정과 같습니다. 수많은 인간적인 두려움을 뒤로하고, 천사가 전해준 '은총이 가득한 이'라는 정체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결론] 내가 믿는 대로 주님을 모시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을 더러운 그릇이라 믿는 사람은 평생 주님을 문밖에 세워둘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이 주님을 담기에 합당한(물론 은총으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님을 잉태하고 낳게 됩니다.
우리가 향심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돌아가는 노력은,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 당신께서 저를 깨끗하다고 하시니, 저는 깨끗합니다. 그러니 제 안에 오십시오."라고 고백하며 문을 여는 행위입니다.
오늘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헛된 겸손으로 뒷걸음질 치지 맙시다. 대신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존엄성을 믿고, 내 안의 가장 깊은 방을 활짝 열어젖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아멘.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26-38: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 축일의 의미와 교리의 확립 오늘 교회는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음을 기리는 대축일을 지낸다. 이는 하느님께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마리아를 구속 사업의 처음부터 특별히 준비하시어, 그분 안에 죄의 흔적조차 닿지 못하게 하신 은총의 신비를 드러낸다. 교황 비오 9세께서는 1854년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Ineffabilis Deus” 교황 회칙을 통하여, 이 믿음을 신앙의 교리로 선포하셨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잉태의 첫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을 받아,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미리 받아 누리셨기에, 원죄의 모든 얼룩에서 완전히 보존되셨다.”
교회는 이 교리를 통해 마리아 안에서 이미 구원의 완성을 미리 보여주셨음을 선포한다. 성모님께서는 “전적으로 거룩하고 흠 없으신 분”(에페 1,4 참조)으로, 교회가 걸어가야 할 성화 길의 표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자와 특별히 깊이 결합되셨으므로, 교회의 신앙과 사랑과 완전한 일치 안에서 모범이 되신다.”(교회 63항).
2. 인간의 자유와 순종을 통한 구원 복음(루카 1,26-38)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마리아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하느님의 계획이 크고 완전하더라도, 인간의 자유와 협력이 빠져서는 완성될 수 없다.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으로 인해 죄와 죽음을 세상에 불러들였듯이, 마리아는 “순종의 길”을 택하여 구원을 열었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순명의 새로운 길”이라 부르며 이렇게 설명한다. “하와가 불순종으로 인해 결박한 매듭을, 마리아는 순종으로 풀어주었다.”(Adversus Haereses III,22,4). 이처럼 하와의 불순종이 죽음을 가져왔듯, 마리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셨다. 태중에 그분을 모시기 이전에, 마음속의 믿음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를 품으셨다.”(Sermo 215,4).
3.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신앙의 구체적 고백 “보십시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마리아의 응답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내어 맡긴 구체적 신앙의 고백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강조한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인간적인 계산이나 의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곧바로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녀의 믿음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맡겨졌다.”(Homiliae in Matthaeum V).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이란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선택임을 배운다. 예수님의 탄생, 수난, 죽음, 부활이 모두 역사적 사건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일상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4.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의 적용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신 순간, 그분은 단순히 하느님의 뜻을 내면적으로 동의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내어놓으셨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이웃에게 봉사의 삶으로 드러난다.
교회 56항은 이렇게 가르친다.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 구원 사업을 위하여 아드님의 협력자가 되셨으며, 믿음과 순종으로 죄와 죽음을 물리치신다.” 그러므로 성모님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뜻에 응답하는 인간의 참된 자유를 발견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질문이 던져진다. 지금 내 삶에서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가정에서, 공동체 안에서, 직장에서, 작은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내고, 기쁘게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길이다.
5. 결론: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 마리아의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은 단지 성모님의 고백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고백이다. 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살고 세상 안에 드러내야 한다.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은총은, 우리도 최종적으로 죄와 죽음을 넘어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교부들의 말처럼, “마리아 안에서 이미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났다.”(성 암브로시오). 그러므로 오늘 이 대축일에, 우리도 성모님과 함께 고백하자.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건태 신부님_은총이 가득하신 분
[말씀]
■ 제1독서(창세 3,9-15.20)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악에 대해 묵상하면서, 히브리인 저자들은 원죄에 관한 기사를 통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모순을 기술합니다. 그러나 이 저자들은 또한 이 악이 정복될 때를 내다보면서, 그 반전의 때를 매우 비유적인 필체로 묘사합니다. 이때는 역설적으로 남자(아담)가 잘못의 책임을 짊어지게 한 바로 그 여자(하와) 덕분에 다가올 것입니다.
■ 제2독서(에페 1,3-6.11-12)
시초부터 하느님의 계획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은총은 악에 의해 파괴된 부분을 서서히 재건하며, 성부에 대한 성자의 진정한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인간실존의 변화를 이루실 예수님께로 인간을 인도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다시 온전히 일으켜 세우는 하느님 사랑의 흐름 속에 자신을 내맡겨야 하며,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던 순간 그러했던 것과 같습니다.
■ 복음(루카 1,26-38)
하느님은 인간의 기대나 관점을 초월하여 신묘한 방법으로 당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며 현존하십니다. 비천한 한 여인, 그러나 당신의 말씀에 온전히 열려 있던 신심 깊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하느님은 몸소 당신의 ‘성전’을 마련하십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할 새 이스라엘의 백성의 참된 성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새김]
인간은 근본적인 모순 속에 잠겨 있는 실존입니다. 사랑이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하느님을 만나 뵙도록 초대되었으면서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온갖 시련들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하느님인 양 처신하는 우를 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창세 3,5) 하는 유혹 앞에 늘 서 있는 존재, 바로 이것이 교회가 원죄(原罪)라는 이름을 부여한 현실입니다.
마리아의 모든 삶은 “하느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욕망과 정반대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그분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으로 선언하고 찬미합니다. 시초부터 하느님의 은총은 마리아의 실존과 함께하고 그분을 이끌어 갔으며, 잉태 순간부터 그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분, 곧 주님의 광채로 휩싸이신 분입니다.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 새로워진 창조가,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리며 다져지기 시작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가득히 받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 모두 원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특은을 받았지만, 특별히 주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이 대림시기,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 이 특은의 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께 전구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는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며 기다리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병자를 위한 기도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 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성직자분들, 모든 병고로 시달리시는 분들, 돈이 없어서 병원을 찾기 어려운 우리 주변의 불쌍한 환우들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 주님의 손으로 일으켜 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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