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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12.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07:21 조회수6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5년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어떤 형제님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집에서

회포를 풀고 있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로 술자리가

무르익고 있을 때,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가 나타나 말합니다.

“내 손녀딸이 아파서 그런데

껌 좀 사주세요.”친구 중 한 명이

할머니가 요구했던 돈보다

더 얹어주며 껌 한 통을 샀습니다.

할머니가 옆 테이블로 갔을 때,

그 옆의 친구가 말합니다.

“그 할머니 사기꾼이야.

손녀딸이 없어.” 이 말에 껌을 산

친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곧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휴~~ 정말 다행이다.

그러면 아픈 사람도 없네.

잘 되었으니 우리 모두 건배~~~”

이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부정적인 마음은 우리의 사고를

닫아버리고 기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열려 있으면 사고도

열리고 어떤 상황이든 다 기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런 열린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마태 11,16)

당시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장터

(agora)와 같은 공공장소에 모여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놀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놀이가 두 가지로,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어떤 제안에도

반응하지 않고 삐쳐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을 꾸짖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에도 춤추지 않고, 회개의

촉구에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무감각’과 ‘고집’으로,

하느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셔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장터의 아이들이 보여준

가장 큰 문제는 ‘악행’이라기보다

‘반응하지 않음’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영적 위기는 하느님의 말씀에

더 이상 가슴 뛰지 않고, 이웃의 아픔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는 ‘무감각’

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에게는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라고 말하고,

예수님께서는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합니다.

실제로 본당 사제가 엄격하면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고, 사제가

자비로우면 ‘기강이 없다’라고

비판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가 참

많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주님께 더는 무관심으로 다가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반대의 마음으로

이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네 스승이 있다.

(논어 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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