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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31일 수원 교구 묵상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9:30 조회수47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병우 신부님_<성탄 팔일 축제 제7일>(12.31.수) -가정성화주간-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14) 

 

'신앙생활의 본질인 재육화의 삶!' 

 

오늘 복음(요한1,1-18)은 '요한 복음의 머리글'입니다. 이 머리글을 '로고스(Logos) 찬가', 곧 '말씀 찬가'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한처음부터 있었던 말씀이 육화되신 분입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의 은총을 받았다."(요한1,16)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너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은총의 구체적인 모습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나를 통해 너에게로 흘러넘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재육화의 삶'입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재육화의 삶'이 바로 '신앙생활이며, 본질'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그리스도의 빛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재육화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시다!

그러한 은총이 나에게 쏟아지도록 날마다 하느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이신 말씀을 가까이 합시다! 

 

'푸른 뱀의 해인 2025년 을사년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 동안 나를 지겨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느님,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먼저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아직 풀지 못한 것이 있으면, 얼른 내가 먼저 용서와 화해로 풀도록 합시다!

나의 모든 죄를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다 내어 드립시다!

그렇게 해서, '붉은 말의 해인 2026년 병오년 새해'를 기쁘게 힘차게 맞이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탄생으로 참된 믿음을 일으키시고 완성하셨으니, 저희를 인류 구원의 샘이신 성자의 지체가 되게 하소서."(본기도) 

 

(~ 유딧7,23) 

 

전삼용 신부님_2025년, 당신은 빛이었습니까, 등불이었습니까? 

 

 

찬미 예수님!

어느덧 2025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저는 여러분께 냄새나는 생선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자신을 인간을 넘어선 신, 곧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거부하며 불로초를 찾았고, 자신의 무덤 지하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천장의 별자리를 보석으로 박아 영원한 빛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스스로 빛이 되려 했던 욕망의 끝판왕이었지요. 

 

그의 최후는 어땠을까요?

그는 순행 중에 객사했습니다.

한여름이라 시신은 금방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환관 조고는 황제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시신이 실린 수레 앞뒤에 절인 생선, 즉 썩은 생선을 가득 실어 시체 썩는 냄새를 생선 비린내로 덮어야 했습니다.

영원히 빛나려 했던 신의 육신은 썩은 생선 더미 속에 숨겨져 옮겨졌습니다. 

 

이와 비슷한 인물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2장의 헤로데 아그리파 1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은으로 짠 눈부신 옷을 입고 연설하자, 아침 햇살을 받아 옷이 번쩍였고 아첨꾼들은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의 목소리다!"

헤로데는 이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마치 자신이 진짜 빛인 양 으스대며 즐겼습니다.

그 즉시 주님의 천사가 그를 쳤고, 그는 구더기들에게 먹혀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던 몸은 가장 하찮은 벌레의 밥이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은,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반사체'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구가 필라멘트를 태워 스스로 빛이 되려 하면 결국 끊어지고 타버립니다.

마지막에 웃으려면, 내가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분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는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요한에게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를 메시아로 착각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요한은 시대의 등불 행세를 하며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 빛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즉 형체 없는 도구로 낮추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며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스스로 빛이 되기를 거부했기에, 예수님은 그를 "여자가 낳은 이들 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며 진짜 별처럼 높여주셨습니다.

만들어진 존재가 좋은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만드신 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전하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아폴로 13'의 실화를 기억하십니까?

우주선 고장으로 궤도를 잃은 아폴로 13호의 비행사들은 지구로 돌아오는 길을 찾기 위해 창밖의 별자리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선 안에서 켜둔 계기판 불빛들과 떠다니는 잔해들이 반짝거려 밖의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길을 찾기 위해 우주선의 모든 전원을 껐습니다.

내부가 춥고 캄캄해지자, 비로소 창밖으로 그들을 인도할 진짜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 빛을 끌 때 별들이 보이고 갈 길이 보입니다.  

 

지난 1년, 우리는 내가 이룬 성취, 내 자존심, 내 계획이라는 불빛을 너무 밝게 켜놓고 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정작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오늘 밤, 나의 빛을 끄십시오.

그리고 먼저 참 빛을 바라보고 그 빛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십시오.

그러면 내년 이맘때, 우리는 훨씬 더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하.사.시.' 연구 모임을 만들고, 번역을 하고, 책을 내고, 강의를 다녔습니다.

많은 냉담 교우들이 다시 성당에 나오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스피커였고, 몽당연필이었습니다.

제가 사라지고 오직 제가 증언한 주님만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제 한 해 농사는 대성공입니다.  

 

마지막으로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성모님을 18번이나 만난 기적의 주인공이었지만, 수녀원에 들어가 평생 궂은 일만 했습니다.

한 수녀가 "당신은 기적의 증인인데 왜 이렇게 숨어 지냅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답했습니다.

"저는 빗자루입니다.

성모님은 청소할 때 저를 쓰셨고, 일이 끝나면 문 뒤에 세워두셨습니다.

빗자루가 스스로 나서면 안 되지요." 

 

그녀는 빛을 반사한 뒤 철저히 그림자 속으로, 문 뒤로 숨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스스로 태양이라 칭했던 진시황과 헤로데는 썩어 문드러졌지만, 스스로 빗자루라 칭했던 베르나데트의 시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빛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25년은 빛이 되려는 해였습니까, 아니면 빛을 전하는 해였습니까?

새해에는 내가 빛나려 하지 말고, 주님의 빛을 세상에 반사하는 맑은 거울이 됩시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 안의 하느님은 커지십니다. 창조자가 아닌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내년 이맘 때는 스스로 타오른 재가 아닌, 빛을 머금은 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조욱현 신부님_복음: 요한 1,1-18: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다. 

 

오늘 복음은 “태초의 말씀”에 대한 장엄한 서두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1절) 이는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히는 가장 근본적 진리이다. 말씀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이자,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시다. 

 

1. 말씀: 하느님의 자기 표현

우리는 말을 통해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듯,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진실하지 못하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 그 자체이며, 한 점 한 획도 변하지 않는 생명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다.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영원히 머무는 실체이시다.”(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I,5) 

 

2. 말씀은 생명과 빛

요한은 이어서 이렇게 선포한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4절) 말씀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빛을 주신다. 이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구원의 빛이며,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빛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말씀을 해설하면서 강조한다. “이 빛은 감각적 빛이 아니라 영적인 빛이었다. 단순한 빛이 아니라 생명이며, 사람들의 생명이다.”(Homiliae in Ioannem II,2) 

 

3. 말씀은 살이 되셨다.

가장 놀라운 선포는 바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4절)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이 시간 속에 들어오시고,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 성 예로니모는 이 신비를 묵상하며 말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말씀(곧 하느님)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Epistula 121,2) 곧, 살이 되신 것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과 친교에 들어가도록 이끄는 은총의 사건이다. 

 

4.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요한은 또 말한다. “그분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을 받아들인 이들, 그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11-12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주석한다. “그분은 당신의 소유에게 오셨으나 그분의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유다인들이고, 받아들인 이들은 이방인들이다.”(Tractatus in Iohannis Evangelium II,13) 곧,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받는다. 

 

5. 오늘의 메시지

오늘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말씀 안에 머무르는 삶’을 결심하고 있다. 말씀은 우리 삶의 근원이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며,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따라서 새해의 첫걸음을 말씀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말씀을 “듣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말씀을 “살아내는” 삶을 결단하여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말씀은 마음에서 들려야 하며, 삶 안에서 실천되어야 한다.”(Sermo 119,3) 

 

결론

말씀은 하느님의 영원한 자기 계시; 말씀은 생명과 빛; 말씀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새해의 첫날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말씀을 닮은 삶”을 결심해야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반영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김건태 신부님_감사와 다짐

 

우리는 모두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서 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표현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되며, 그 상념은 곧바로 후회와 반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은총에 은총을 받은 사람답게, 조금이라도 더 인내하고 더 나누고 더 너그럽지 못했던 시간들이 마냥 아쉽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한편, 이러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개선의 희망이 있고, 신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의식만큼은 아직 건재하다는 자평으로 위로를 삼기도 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려는 의지만큼은 분명하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 섬김에 많은 부족함이 있었음에도, 우리와 우리 가정을 살펴주신 하느님께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이 이러저러한 고통 앞에서도 사랑으로 힘을 모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셨음에, 그럼으로써 가족애를 더욱 돈독히 다져나갈 수 있었음에 감사 드립니다.

 

또한,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부모님, 가족은 물론, 때로는 가족보다 더 챙겨주시고 참 신앙인의 모습을 일깨워 주셨던 형제자매들을 기억하며, 그분 안에 생명이 있는 주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도 많이 그리운 분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꼭 다시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은 분들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신 분입니다. 그 덕에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올 한 해를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믿음을 마음으로뿐,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 아직도 부족함이 많고 서툴렀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에서는 헛된 용기를 내면서도, 해야 할 일 앞에서는 시간과 능력 등을 핑계로 망설였던 때가 허다했습니다. 그분께서 땅에 오셨지만,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은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뿐임을 깊이 뉘우칩니다.

 

끝으로, 가족 이외에 감사해야 할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오늘 복음 속의 여러 요한님들입니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고 내게 다가왔던 분들입니다. 신앙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정말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을 때, 찾아와 기도로 위로해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셨던, 그래서 올해도 이렇게나마 신앙을 이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년에는 내가 요한의 모습으로 남들에게 다가서겠다는 다짐과 함께, 넘치는 은총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기약해야 하겠습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송영진 신부님_<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1-5).”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9-14).”

 

1) 연말연시를 맞아서 새해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많을 텐데,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다음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야고 4,13-17).”

 

여기서 ‘주님께서 원하시면’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면’입니다.

 

우리가 하기를 원하는 그 일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모두 주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하려고 계획해야 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일해야 하고,

 

일의 결과는 주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2) 구약성경 ‘잠언’의 저자는 “마음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혀의 대답은 주님에게서 온다(잠언 16,1).”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워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믿음 없는 악인들을 보면,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한다. 주님께서 그 악인들의 ‘악한 일’을

 

허락하셨는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악인들의 악한 일’을 허락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자들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일들을 인간의 눈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의 일은 모두

 

바벨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의인이든지 악인이든지 간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라는 점은 똑같지만,

 

주님 마음에 들게 잘 살고 있는 의인들은

 

허무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그들이 행한 선한 일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살고 있는 악인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냥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고,

 

그들이 한 일도 먼지처럼 허무하게 소멸될 것입니다.

 

3) 요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1요한 2,15-18ㄱ).”

 

세상과 세상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탐욕과 집착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라는 말은,

 

그런 것들은 모두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 하느님에게 속한 것만 영원히

 

남아 있게 됩니다.

 

신앙인은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영원한 것만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4)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일은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끝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인가, 영원한 존재가 될 것인가는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고,

 

우리가 ‘지금’ 만들어 갑니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는 것은,

 

새해를 더 잘 만들어가기 위한 일입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기만 하는 것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자기 마음대로 설계하면서 큰소리치는 것도,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주신 것에

 

감사드리면서, 겸손하게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내가’ 죄 속에서 죽지 않고,

 

당신과 함께 살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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