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1월 2일 수원 교구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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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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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02 | 조회수53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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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예언자로 사는 한 해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여러 예언자를 만나며, 그 가운데는 예언서의 저자로 소개되는 예언자도 적지 않습니다. 흔히들 예언자(豫言者)하면, ‘미리 예(豫)’자를 쓰는 관계로, 사전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앞일을 예언하는 사람’ 정도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자들은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했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들이 미래를 내다볼 때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거를 돌이켜 보는 가운데,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하느님 백성다운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예언자들은 이들이 제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개입하여 과거의 삶, 특별히 광야에서의 순수했던 삶으로 돌아가기를 촉구하거나, 계속 고집한다면 앞날에 하느님의 응벌이 들이닥치리라 예고했습니다. 결국 예언자들은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느님에 의해 파견되어 말씀을 전하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던 사람들입니다.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백성다운 삶을 살도록 파견된 사람들이니, 이들의 핵심 주제는 당연히 회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예언자가 참된 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인지 가름하는 척도 가운데 으뜸은 그래서 회개입니다.
주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파견된 세례자 요한, 오늘 복음에서 보면 당대의 사람들은 그를 예언자 이상으로 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예언자 엘리야가 언급되기 때문이며, 나아가 예언자들이 한마음으로 향했던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까지 보았던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억측을 마다한 채, 자신을 가리켜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응답합니다. 순수의 땅 광야, 정의와 진리의 땅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 사실 세례자 요한은 정의와 진리로 무장하고서 당시의 지배 계급을 벌벌 떨게 했던 사람입니다. 나아가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하는 고백으로 자신의 겸손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도 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왕직,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 (하느님과 세상의 화해를 이루는) 사제직을 사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또다시 허락해주신 이 새로운 한 해, 의로운 마음과 참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힘차게 전하며 실천에 옮기는 가운데, 말씀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복음: 요한 1,19-28: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입니다.”
1. 세례자 요한의 증언 오늘 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증언을 우리에게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와 삶을 보고 혹시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 또는 엘리야나 모세가 약속한 예언자가 아닐까? 물었다. 그러나 요한은 단호하게 “나는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사 40,3)라 밝히며, 오히려 이미 와 계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초대한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요한 1,27)이라고 말하며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주님을 드러낸다.
2. 참된 겸손과 증언 요한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된다. 우리는 작은 일 하나에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때로는 과장하고 포장하고 싶어 한다. 흔히 말하는 ‘백마병’에 걸려, 마치 모든 영광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듯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빛으로 착각하지 않고, 빛을 드러내는 증인이었다(요한 1,8 참조).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겸손은 하느님을 닮는 길이다. 교만은 하늘에서 떨어지게 하지만, 겸손은 하늘로 들어 올린다.”(De Humilitate, 20)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는 또한 가르친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이다. 내가 증언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드러나는 말씀이다.”(Oratio 37, 13) 이처럼 교부들은 요한의 겸손한 증언을 우리 신앙의 모범으로 보았다.
3. 교부들의 모범과 오늘의 과제 오늘 기념하는 성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역시 요한 세례자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증언한 주교들이었다. 성 바실리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바실리아스’라 불린 구호 단지를 세워, 자신의 삶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성 그레고리오는 교회의 일치를 지키고, 삼위일체 신앙을 수호하며, 자신의 말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려 했다. 그들의 겸손과 증언의 삶은 오늘 우리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다.
4. 우리에게 주는 초대 우리의 사명은 요한처럼, 또 교부들처럼 주님을 드러내는 삶이다.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드러나는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행과 선택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증언이다. 오늘 우리는 기도하자. “주님, 저희가 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처럼 겸손히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의 말과 행실이 저희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ㅁ
전삼용 신부님_금반지를 낀 손가락으로는 달을 가리킬 수 없습니다
찬미 예수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저는 제가 한 일에 너무 제 자신을 드러내려 한 것은 아닌지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매번 그렇습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나도 좀 봐주소서"라고 속삭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은 이런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뉘우치게 합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지우고 오직 주님만을 가리켰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 배우의 이야기를 통해 이 겸손의 신비를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헐리우드의 슈퍼스타 멜 깁슨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그의 내면은 썩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실 거짓말에 능숙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즉 멋진 가면을 쓰고 대중을 속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는 너무 일찍, 너무 높이 올라갔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성공의 무게는 그를 알코올 중독과 분노 조절 장애라는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가족들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그는 스스로 쌓아 올린 명성의 탑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끼워준 '성공'이라는 금반지가 그의 손가락을 조여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연기(거짓)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 3천만 달러(약 400억 원)를 털어 영화 한 편을 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말렸습니다. "누가 아람어와 라틴어로만 대사하는 잔인한 영화를 보겠어? 당신은 파산할 거야!" 하지만 멜 깁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을 철저히 지웠습니다. 그는 감독으로서 카메라 뒤에 숨었고, 심지어 영화 속에서 딱 한 장면,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을 박는 로마 병사의 손만 직접 연기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나의 죄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스타의 금반지를 빼버리고, 대신 죄인의 망치를 들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죽이고 오직 예수님의 수난만을 드러내려 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영화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영혼을 울렸고, 그 자신도 깊은 회개와 신앙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그는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화려한 배우가 아닌 겸손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을 죽이자,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멜 깁슨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온 유다가 그에게 몰려들었고,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로 착각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요한은 시대의 구세주 행세를 하며 금반지를 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손가락에 화려한 금반지를 끼고 달을 가리키면,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금반지만 쳐다봅니다. 요한은 그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손가락에서 모든 영광을 빼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가리키는 투박한 표지판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반면, 자신이 가리켜야 할 소명을 잊고 자기 영광에 취해 망해버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솝 우화의 '젖 짜는 처녀와 우유통'입니다. 처녀가 머리에 우유통을 이고 시장에 갑니다. 그녀는 걷으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집니다. '이 우유를 팔아 달걀을 사고, 병아리를 까서 닭을 팔아 돼지를 사고, 소를 사야지. 그리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가서 나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에게 콧방귀를 뀌어 줄 거야!' 그녀는 상상 속에서 너무 신이 난 나머지 고개를 홱 젖혔고, 머리 위의 우유통은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현재의 소명(우유 운반/주님 증거)보다 미래의 내 영광(드레스/금반지)에 취해 있을 때, 지금 가지고 있는 은총마저 쏟아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작품이 자기 이름을 크게 쓰면 작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일화를 기억하십니까? 젊은 시절, 그는 '피에타' 상을 조각하고 나서 사람들이 작가를 몰라보자 밤에 몰래 들어가 성모님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자신의 금반지를 끼워 넣은 것이지요. 하지만 나중에 그는 깊이 후회하며 그 이후로는 어떤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고도 어디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보잘것없는 내가 내 이름을 자랑하려 했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지움으로써 오직 작품 속의 영성만을 드러내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나를 지울 때, 하느님이 드러납니다. 내 손가락의 반지를 뺄 때, 사람들이 비로소 내가 가리키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 내 말과 행동에서 '나'라는 이름을 지우는 연습을 해봅시다. 내가 사라진 그 자리에, 주님의 영광만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아멘.
이병우 신부님_<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한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1.2.금)
"당신은 누구요?"(요한1,19)
'나는 누구인가?'
오늘 복음(요한1,19-28)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유다인들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습니다. 이 물음에 요한은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자신의 분명한 신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3.26-27)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신원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이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이제와 영원한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분, 땀 흘리신 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삽시다! 그리스도인 척하지 말고, 그리스도인답게 삽시다!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사람들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충실하게 따라가지 못했다고 넘어져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주님께 부족함을 내어 맡기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제인 척하지 말고 사제답게 삽시다! 수도자인 척하지 말고 수도자답게 삽시다! 그리스도인 척하지 말고 그리스도인답게 삽시다!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1요한2,22)
(~ 유딧9,14)
송영진 신부님_<“나는 지금 무엇을 메시아께 바라고 있는가?”>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요한 1,19-28).”
1) 이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메시아로 오신 분이 누구인가?”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면,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에 반발해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져가고 있었고,
실제로 여기저기서 독립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에 독립을 가져다 줄 정치적인 지도자였고,
그들이 생각했던 ‘구원’은 로마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과 다윗 왕국이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칭 메시아’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그런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 있습니다(사도 5,36-37).>
당시에 많이 나타났던 ‘자칭 메시아’들은 로마제국과
예루살렘 기득권층 세력들에게는 ‘골칫거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최고의회에서는 요한이라는 사람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2)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말한 ‘그리스도, 엘리야,
그 예언자’는 모두 ‘메시아’를 뜻하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은 그들의 질문들에 대해서
모두 ‘아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라는
말은,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서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의 일을 미리 준비하려고 온
사람’일 뿐이다.” 라는 뜻입니다.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왜 메시아처럼 세례를 주는가?” 라는 뜻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는, “나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일
뿐이다.”인데, 이 말에는, “메시아께서 주시는 세례는
‘구원의 세례’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라는
말은, “너희는 지금 모르고 있지만, 메시아께서는 이미
너희 가운데에 와 계신다.” 라는 뜻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라는 말은, “나보다
훨씬 더 높으신(위대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는 말은, “그분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라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말은 자기를 낮춘 말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나타낸 말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무턱대고 자기를 낮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3)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예수님은 메시아”
라고 ‘이미’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믿음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과는 상관없이,
예수님 부활 후에 이루어진 사도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실 무렵에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중요했지만,
오늘날에는 사도들의 증언이 더 중요합니다.
<아직 안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믿은 신앙인들의 증언이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메시아를 찾고 있는가? 내가 지금
메시아께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8,36).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
예수님을 믿어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들
가운데에도, 사이비 종교나 이단 종교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하늘에 속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 속한 것’만 생각할 때 그런 일이 생깁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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