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생활묵상 : 영혼의 때를 어떻게 제거하시는지요? 1편 | |||
|---|---|---|---|---|
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6-01-07 | 조회수5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저는 작년에 약 한 달 동안 여자 목욕탕을 청소하면서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경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좋은 의미로 말한다면 좋은 인생 경험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올리는 글에서 약간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를 아주 쬐끔 할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건 절대 여성을 폄훼하려고 하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처음엔 어떤 자매님의 딱한 사정 때문에 도움을 드리려고 했던 것입이다. 그리고 저는 남자라 사실 어릴 때 어머니랑 여탕을 간 이후에 처음으로 여탕을 가 보게 된 것입니다. 실제 처음엔 기분이 좀 묘했습니다. 저는 25세부터 사우나를 코로나 전까지 계속 한 20년 넘게 했습니다.
사우나를 즐기는 이유는 처음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했습니다. 그때 그 종교는 매일 목욕을 해야 하는 계율 같은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런 게 계기가 돼 사우나를 하게 된 것이지만 그 종교를 떠난 후에는 그 계율과 상관없이 사우나를 하지 않으면 결백증은 아닌데 찝찝해 계속 사우나를 하게 됐습니다. 청결함을 떠나서 일단 사우나를 하게 되면 한 후에 느끼는 기분은 상쾌합니다. 어쩌면 그 기분 때문에 중독 아닌 중독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코로나 이후에는 흔히 달목욕이라는 것 말고 그냥 가고 싶을 때만 가게 됩니다. 사우나는 가지 않아도 샤워야 매일 하지만 사우나가 주는 상쾌함은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코로나 전에 다녔던 사우나는 제가 서울에서 살다가 내려와 바로 제가 운영하는 학원 옆이라 그곳은 24시간 내내 하는 곳이라 고3 수업이 끝나면 간단하게 사우나 하고 귀가를 합니다. 그곳에서 간혹 탕청소를 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때 그 사람이 하는 걸 간접적으로 본 게 있어서 제가 한 달 동안 여자 목욕탕을 청소하면서 도움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게 이렇게 활용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여탕이 됐든 남탕이 됐든 제가 이런 일을 물론 잠시이지만 하게 될 줄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느낀 게 있습니다. 물론 직업이나 생계 때문에 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달리 말하면 달리 표현하면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시작하면서 배웠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없겠지만 만약 그때 제가 사우나를 할 때 청소하는 그 사람을 소위 말하자면 낮게 본다면 말입니다. 이건 제게 탕청소를 하는 첫날 가면서 느낀 점이었습니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남탕인지 여탕인지는 전혀 구분 안 됩니다. 물론 약간 차이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탈의실 부분과 탕 내에 비치하는 물품 그 정도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처음에 여탕을 들어갔을 때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남탕과 여탕을 비교하면 물론 남탕도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청결도를 보면 마치 조금 과장하면 어디 전쟁터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여자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장소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깨끗할 줄 알았는데 완전 정반대였습니다. 제가 남자라 남자를 두둔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실제 경험을 해보면 제 말을 믿을 수 있을 겁니다. 이때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실제와 환상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와 환상은 같을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정말 저한테는 중요한 묵상거리가 됐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긴 합니다. 그럼 이야기가 삼천포로 가게 돼 약간만 언급하겠습니다. 신앙에 한정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판단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죄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런 판단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일상에서 언급하는 그런 판단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런 판단을 할 때 보통 보면 그런 판단을 할 경우에는 사전에 그런 판단을 하기까지의 어떤 고정된 고정관념도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고려는 하되 그게 선입견으로 작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보통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는 청결하지 않다는 이런 게 작용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도 있고 아닐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전제를 깔고 제가 경험한 사실에 비추어봤을 때 우리가 무언인가 판단을 하게 되면 자기가 실제 보지 않고 또 듣지 않은 부분은 판단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추측도 물론 안 되는 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원론적인 이야기인데 보통의 사람은 이런 사실을 알긴 알아도 실제로는 그냥 교과서적인 이야기라 치부하고 추정해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금물입니다.
만약 제가 평생 동안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막연히 여성이 남성보다는 좀 더 깨끗하다는 선입견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보다 불결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이 부분에 한정해 언급한 사실입니다. 한번은 학문적으로 이런 사실이 인류의 진화와 관련됐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 사실을 전제로 해서 이젠 신앙 안에서 신앙의 측면에서 봤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게 실제 그렇게 해도 법률적인 측면이나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판단의 오류가 가져오는 결과는 도덕적인 비난 정도에 머물 수 있겠지만 신앙 안에서는 '판단의 죄'라는 '죄'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사실이 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단순히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죄를 짓는 경우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도 죄를 짓거니와 또 남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대가를 치르면 되지만 그게 남에게 피해를 줬을 땐 그 대가는 어떻게 보상을 치러야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외연을 확장해보면 이건 신앙 안에서 봤을 땐 하느님의 영역이고 또 우리가 묵상을 한다고 해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이건 신학자도 마찬가지이고 신부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는 어떻게 확실한 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이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해서 신학이라는 학문적인 잣대로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오류 아닌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이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걸 뛰어넘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성당을 다니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기도생활을 해도 모래위에 있는 성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게 두 번째 느낀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느낀 묵상거리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목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영혼의 때'입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목욕탕을 가게 되면 때를 미는 그런 문화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여자는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달 동안 하면서 남탕과 여탕을 비교해보면 다른 건 모르겠는데 가장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탕에는 각각 배수구가 있습니다. 남탕은 크게 어려운 게 없는데 여탕은 힘들어서 힘든 게 아니라 배수구 청소를 할 땐 정말 비위가 안 좋은 사람은 아주 힘듭니다. 여자는 특성상 남자보다 머리가 길기 때문에 배수구 청소가 머리카락 때문에 힘들다는 게 사실이지만 단순히 머리카락 문제면 모르겠는데 머리카락 때문에 막혀서 쌓인 때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냥 군데 군데 있는 때는 크게 역겹지 않는데 배수구에 뭉쳐 있는 때는 정말이지 보는 것 자체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남탕과 비교해보면 아직까지도 여자분들은 때를 미는 문화가 여젼한 것 같습니다. 보통의 경우를 보면 주부와 할머니가 고객의 전부이고 또 대개 달목욕을 하는 회원들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목욕을 정기휴무를 제외하고는 할 텐데 그럼 잘 없어야 할 텐데 생각과 달리 매일 그렇다는 것입니다. 매일 목욕을 하는데 이게 매일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처음엔 목욕탕을 원래 목욕을 하고 또 때를 제거하는 곳이라고 애써 힘줘 생각을 해도 아직까지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한 후에 문득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고는 싶지 않은데 그때 성당의 미사가 묵상이 됐고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이 이후 이야기는 다음 편 묵상에서 이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