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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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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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07 | 조회수105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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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하느님께서는 공평하게 하루에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의미 있는 일, 소중한 일을 먼저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의미 없는 일, 필요 없는 일을 먼저 합니다. 하루는 큰 차이가 없지만,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나면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소방관에게 소중한 일은 ‘화재’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소방관이 불이 났는데도 다른 일을 한다면 소방관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환경미화원에게 소중한 일은 쓰레기를 치우는 일입니다. 환경미화원이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역시 환경미화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며칠 전입니다. 오후 1시 30분에 ‘운동치료’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봉성체’ 부탁이 있었습니다. 제게 소중한 일은 건강을 위해서 운동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소중한 일은 지금 몸이 불편한 분에게 ‘성체’를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이 하루나 일주일이면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한 달이나 일 년을 넘게 되면 표시가 나게 됩니다. 주변을 보면 돈이 삶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의 정책도 예산이 중요합니다. 본당에서도 재정이 중요합니다. 매달 재정평의회가 있습니다. 수입과 지출을 보면서 수입이 지출보다 많으면 기분이 좋다가도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도 돈은 꼭 필요합니다. 저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거나, 원망한 적도 있습니다. 29년 전에 한국에는 IMF가 있었고, 저와 저의 가정에도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가족들은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요양원으로 미사를 가거나, 가정으로 봉성체를 가면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주님을 모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100세 되신 어르신이 주님을 모시는데 마치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은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나누었는지, 얼마나 희생했는지, 얼마나 기도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의 위기가 있다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아닐 것입니다. 가정에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이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성사의 열정이 식어가기 때문에, 복음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멀리 떨어진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 어려운 이웃의 짐을 들어 주는 것, 처음 사제서품을 받은 그 열정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파도가 밀려온다고, 사나운 파도가 친다고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습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어쩌면 그 파도를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2026년 우리의 삶에도 많은 파도가 밀려올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게 되고, 때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웃과 헤어지기도 하고, 사업이 어려움을 겪기도 할 것입니다. 열심히 성당에 다니던 남편이 별 이유 없이 성당에 나가지 않을 때도 있고, 성당에는 가지 않으면서 결혼은 성당에서 하고 싶다는 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삶의 파도는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물속에서 파도를 즐기는 물고기처럼 이왕 피할 수 없다면, 우리들 또한 삶의 파도를 받아들이고, 그 파도 속에 녹아있는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제 단순히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만이 형제가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 묶인 이, 감옥에 갇힌 이, 억울한 이, 절망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형제요 자매라고 말합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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