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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보이지 않는 영혼의 때 두 번째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6-01-07 조회수48 추천수1 반대(0) 신고

 

계속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피부과 의사로 유명한 함익병 원장 선생님이 있습니다. 예전에 예능 쪽으로 나온 걸 조금 봤습니다. 그땐 잘 몰랐는데 사실 저는 2000년 이후로는 티브이를 잘 보지 않아서 유튜브로 어쩌다가 보게 된 의사입니다. 최근에 마산 출신이라는 걸 우연히 부인이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고 검색해 알았습니다. 이 의사도 방송에서 때를 미는 건 피부 건강에는 별로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이건 보통 잘 아는 상식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전에 못살던 시절에 목욕 문화가 좋지 않은 그 영향으로 인해 목욕탕 하면 때를 제거하는 장소마냥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누구나 목욕탕에서 때를 민 경험은 다 있을 겁니다. 목욕탕 가는 주기가 짧은 사람은 민다고 해도 적게 나오지만 주기가 긴 사람일 경우에는 때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육신의 때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때수건으로 밀면 나오고 또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또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 더렵혀져도 얼마나 더러운지는 잘 모르게 됩니다. 청소를 시작한 지 며칠째 된 날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한 일주일 정도 했을 때 순간 소름이 올라왔습니다. 만약 우리 영혼의 때도 이렇다면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이 생각에 이어서 바로 떠오른 생각이 성당과 고해소가 생각났습니다. 성당과 고해소가 마치 육신의 때는 목욕탕에서 없애듯이 영혼의 때를 맑게 해 주는 곳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영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일단 작은 범주에서 큰 범주로 확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해소에서는 죄를 고백하고 그 죄로 인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에 대해 하느님과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하는 의미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해의 성사라고도 하긴 합니다. 그나마 죄를 짓거나 또 영혼이 혼탁했을 때는 이렇게 성사를 통해서도 나름 어느 정도 깨끗하게 유지를 할 수 있게 되지만 사실 성사생활을 엄밀히 말하면 교회의 가르침대로 정확하게 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자신이 어떤 죄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합리화해서 죄를 무마시키는 것처럼 하니 말입니다.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했을 때 또 이런 게 장기화가 되고 습관성이 되다 보면 나중에는 죄라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되고 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목욕탕 가는 주기가 길면 묵은 때가 엄청 나오듯이 우리 영혼의 때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집안에 청소를 할 때 먼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것은 처음부터 수북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주 미세한 먼지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나중에 그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먼지를 청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샤워를 하고 단정하게 꾸미고 미사를 참례하며 하느님을 경배한다고 해도 그게 제대로 된 경배가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은 아니지만 상상의 날개를 펴서 하느님이라고 가정을 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면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얼마나 역겨우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호세야가 고메르를 대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때 호세야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알려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고 해서 그렇다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인식을 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다 양심은 있습니다.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제가 제 글을 찾아보면 알 수 있는데 언젠가 저를 속이고 돈을 가져갔던 제 상사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7년 전에 있었고 그에 대한 글은 5년 전에 한 번 언급했습니다. 연락을 완전히 끊고 해서 저는 그때도 언급을 했지만 포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연락이 됐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돈 때문에 연락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그 이후로는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혹시나 해서 한번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내려와 사실 이분이 창원에서 한 때는 영어학원의 대부라고 했던 분이고 본인은 사업적인 수단만 가지고 했고 실제는 부인이 영어를 아주 잘 하셨습니다. 전에 외교부장관 하셨던 강경화 장관님과도 같이 학교를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잠시나마 원장님 아래에 있었던 인연으로 교류를 했는데 그만 어떻게 원장님도 일이 잘 안 돼 결국에는 저한테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근데 그렇게 했던 사람이 언제부터는 제 번호를 차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처음엔 약간 놀라웠습니다. 보통 전화를 하면 '강원장'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제 이름을 부르는데 이번에는 그냥 흔히 전화를 받는 멘트를 했습니다. 목소리 들어보니 당연히 본인이었습니다. 화가 나지만 이성적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차라리 저한테 사정이 있어서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는 식으로 용서 아닌 용서를 빌었다면 그냥 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고생을 안 했을 건데 왜 그렇게 거짓말로만 일관을 했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토록 전화도 차단을 하고 끊고 했는데 지금은 전화를 받는지를 여쭤봤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몹쓸 병이 걸려 병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몇 차례 했는데 할 때마다 생각한 게 있다고 했습니다. 다리에 이상한 병이 왔습니다. 상태를 사진으로 보여줬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저한테 한 나쁜 짓 때문에 몹쓸 병이 왔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시일은 걸리지만 나중에 제가 혹여라도 연락을 하게 되면 제 돈을 갚을 마음이 있어서 그래야 나중에 자기도 마음이 편할 거라 전화 차단을 풀었다고 했습니다. 이건 사실 그분의 병과 인과관계가 없지만 그분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기 때문에 자신 속에 있는 최소한의 양심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처음엔 제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치 화가 나긴 하지만 지금 그분이 했던 행동을 보면 분이 안 풀리겠지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런 막다른 골목에 있는 사람에게 제 돈을 갚으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제가 문자로 전했습니다. 제 돈 안 갚아도 되니 하시는 치료나 잘 하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만약 하느님을 안 믿었으면 그래도 화가 나 갚으라고 했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제 성격상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게 모질게는 하지 못했을 겁니다. 양심이라는 걸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아무리 죄를 짓고 양심이 무디어졌다고 해도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하느님이 저희를 창조하실 때 심어준 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양심이 있기 때문에 원래 우리의 영혼의 고향인 본향에서 가졌던 양심으로 회복될 가능성의 여지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간단하게 한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음이 닥칠 것입니다. 육신은 흙으로 가지만 영혼은 하느님께 가게 됩니다. 그때 맑고 고결한 영혼으로 갈 것인지 더럽고 추악한 영혼으로 갈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때 제가 목욕탕을 청소하면서 보게 되는 배수구에 쌓인 때를 보며 역겨워 힘든 것처럼 하느님께 우리의 영혼의 때도 만약 그와 같다면 어떻게 하느님 얼굴을 뵐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고해를 통해 영혼 관리를 잘 해야 되는데 생각보다 이것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또 많은 죄를 짓고도 마치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것이라고 애써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는 지경까지 가게 되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행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영혼도 어쩌면 제가 목욕탕에서 본 그 육신의 더러운 때처럼 우리 영혼의 때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해성사는 차치하고 어떻게 하면 그나마 맑고 깨끗한 영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묵상입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습니다만 나름 생각한 것은 죄에 넘어지고 넘어져도 마지막에 하느님을 만날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하며 더럽고 역겨운 영혼으로는 가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을 계속 품고 그 마음을 초지일관 변하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하려교 한다면 아무래도 죄를 짓더라도 조금 더 덜한 죄를 짓게 되고 또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죄를 덜 짓게 될 것이고 그런 노력을 경주하다 보면 언젠가는 맑은 영혼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묵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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