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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1.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6-01-10 조회수9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6년 1월 10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셨지만,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하느님

용서의 범위는 무한합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어떤 죄를 말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성령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성령께 바치는

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일까요?

모두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희망을 버리는

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는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기 구원에 대해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유다는 죄를 지은

뒤에 절망에 빠져 스스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배신

이라는 큰 죄를 지었지만, 끝내

예수님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죄에서 벗어나서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진짜 불만은 논쟁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몰려가는 현상’에 대한 위기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 3,26)

제자들은 예수님의 성공을 보며

인간적인 시기심과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스승인 요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세례받는 사람의 수로 영적 권위를

판단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요한은

흔들리는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요한 3,27) 요한은 자신의

인기도, 예수님의 높아지는 위상도

모두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

가 아니라 그보다 앞서 파견된

‘선구자’임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이 구절은 단순히 겸양을 떠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 구원 역사 안에서

꼭 필요한 말입니다. 태양(예수님)이

떠오르면 샛별(요한)은 빛을 잃고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에게

‘작아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지움으로써,

역설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높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로부터 자유로워

지면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 안에

머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서로의 얼룩을 애틋하게 여길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

(김선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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