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세례 축일 가해]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10:11 조회수38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님 세례 축일 가해] 마태 3,13-17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신앙’을 살기 위해 세례를 받는 우리들을 축복하시고, 그런 우리를 당신께서 참으로 사랑하시는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며 그분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 우리는 ‘세례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습니다. 그 소중한 이름이 그저 예뻐서, 어감이 좋아서, 생일에 가까워 기억하기 쉬워서 부르는 ‘호칭’으로 끝나서는 안되겠지요. 내가 받은 새 이름이 나의 ‘정체성’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아 하느님과 일치되어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누리겠다는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 뜻을 따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세상의 거센 풍랑을 이겨낼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내가 받은 세례의 은총이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세례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행해지던 세례는 물로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는 것처럼, 진정한 통회와 회개를 통해 내 영혼을 더럽히는 죄를 깨끗이 씻겠다는, 그래서 하느님께 구원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세레머니’였지요. 그런 의미를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굳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되시는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며 사셨기에 죄를 지으실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에 물들지 않은 거룩하고 깨끗하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려고 하시니 요한이 그분을 만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셔야 할 분이 오히려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여긴 겁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혹스러워하던 요한에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의로움이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하여 법과 규칙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는가에 따라 평가된다면, 신앙의 영역에서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을 기준으로 하여 그분과 얼마나 올바르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정의됩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이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룬,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필요성’이나 ‘신원’으로 따지면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는 예수님이 굳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당신의 순명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이 ‘특별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시어 세례를 받으시니,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가 ‘나는 죄 없다’고, ‘회개할 필요없다’고 버틸 명분이 없습니다. 참된 의로움을 지닌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을 담가 물을 거룩하게 만드시니, 그 물로 세례를 받는 모든 이가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를 씻는 ‘의식’에 불과했던 세례가 주님의 순명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사’가 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먼저 물 속에 완전히 잠김으로써 하느님을 알기 전의 나, 세상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으로 가득했던 내가 죽습니다. 내 몸을 씻고 난 뒤 물 밖으로 다시 나옴으로써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하셨을 때의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 ‘부활의 표징’이 크리스마 성유로 내 영혼에 새긴 ‘인호’로, 교회공동체 안에서 불리게 될 새로운 이름으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한편,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나자 그분께 하늘이 열리고 비둘기의 형상을 한 성령께서 그분 위로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며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지금은 비둘기 모양을 한 성령이 예수님께로 내려와 그분과 함께 머무르면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과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겁니다. 그 새로운 창조가 끝난 상태가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이며, 그 나라가 완성될 때 우리는 비로소 비둘기가 상징하는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에 순명하여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시고, 그분이 당신으로부터 사랑받는 아들, 당신 마음에 드는 아들임을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마음에 든다’는 건 말 그대로 어떤 존재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는 뜻이지요. 어떤 대상을 사랑으로 내 마음 속에 품으면 그의 모든 점이 흡족하고, 그를 내 마음 속에 품고있다는 그 사실 자체로 기쁜 법입니다. 아들 예수님을 사랑으로 당신 마음 안에 품으신 하느님의 마음이 그렇지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비단 예수님 뿐만 아니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다. 우리가 잘 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당신께 사랑받을만한 자격을 갖춰서도 아닙니다. 부족하고 불완전해도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당신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자 노력하는 우리 모습을 어여삐 보시어 사랑으로 당신 안에 품어 주시는 겁니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생각하며, 자꾸만 나태해지고 안일해지는 우리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 죄만 안지으면 된다는 적당주의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그분 자녀답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세례성사 때 받은 은총을 완성하여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