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생활묵상 : 새신부님에게 바람이 있다면...... (부제 : 부디 강론에 목숨을 거는 신부님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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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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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32 | 조회수21 | 추천수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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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일에는 집을 나가면서 어느 성당을 갈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가까운 이웃에 있는 성당을 갔습니다. 사실 오랜만에 그곳에 인사도 드릴 자매님( 전마산교구 성체조배회장님)도 계시고 해서 그렇습니다. 이왕이면 말입니다. 그분은 평소 저를 대할 때 연배도 저보다 훨씬 많으시고 또 큰이모뻘 정도 되시는데도 아주 정중하게 말씀하나 하나도 예의를 다하고 행동 하나 하나에도 예의를 다해 주십니다. 제가 송구할 따름입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라서 사회적인 신분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고도 생각을 해봤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 주위에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다수의 교사 출신의 신자를 보면 다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반 평범한 신자보다도 행동이 떨어지는 신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을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분에 대해 설명을 하고자 한다면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회장님이 교사 출신이기 때문에 마치 노블리스 오빌리지 같은 개념입니다.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게 몸에 배어 있어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또 한 가지는 제 직업이 물론 사교육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선생이었다는 사실도 한몫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사회적인 인식에서는 사교육 선생이 조금 공교육 선생보다는 못하다는 인식은 있지만 저는 그런 면에서 전혀 꿀리지 않았습니다. 애들이 증명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 되지 않는데 애들이 저한테 해 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록 사교육을 하는 선생이었지만 뿌듯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생락하겠습니다. 일반 선생님을 비하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표현하면 대충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의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끌기 위한 전초전입니다. 사실 어제 미사를 마치고 영성체 때 미사에 오신 걸 발견하고 성당 마당에서 기다렸다가 인사를 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다른 일 때문에 나오시지 않아 그만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왔습니다. 문자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답장이 길게 왔습니다. 첫마디가 손을 한번 잡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였습니다. 이분은 항상 뵈면 저한테는 악수를 권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경우에 신자들 사이에 그것도 자매님께 인사를 하면 그냥 서로 목례 정도 가볍게 인사를 하는 게 다반사인데 이분은 항상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저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어제 이 본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실 이 본당은 예전에 제가 영세를 받기 전에 약 4년 전에 이 본당에서 교리를 받은 적이 있었고 또 최초로 그때 이 본당에서 패션오브크라이스트를 봤습니다. 그때 교리를 해 주신 신부님이 보좌신부였는데 몇년 전에 오전에 제가 다닌 본당에 낮 미사에 오셔서 저를 기억하시지 못할 줄 알았는데 세월도 세월이고 또 그것도 예비자 교리 때 잠시 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성체 때 놀랍게도 기억을 하시는 것입니다. 약간 배경을 설명을 하다 보니 삼천포로 흐른 느낌입니다. 여러 번 이 본당 신부님 강론을 들었는데 백이면 백 다 좋은 강론이라고 할 수 없는데 거의 95는 아주 좋은 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평이면 이건 아주 극찬에 가까운 극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전에도 이분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분의 강론은 일단 내용 면에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깊이 있는 강론 원고를 작성한다고 해서 그 원고대로 단순히 읽는다고 다 강론 내용이 우리의 심부에 잘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도 사실 재능에 가깝다고 하는 달란트가 있어야 합니다. 이 신부님은 일단 그런 호소력과 전달력이 아주 훌륭합니다. 이건 말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제가 표현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긴 하지만 그 느낌을 글로 전하려면 양이 엄청 길어 그냥 여기에선 생략하겠습니다. 일단 이분은 기본적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에 대한 작문의 기법 이런 게 제가 언어를 다루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타고난 재능인지 아니면 갈고 닦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언합니다. 요즘은 예전에는 신부님이 부임을 하면 4년 정도 계셨다고 하는데 이젠 3년으로 1년 단축됐습니다. 평균입니다. 제가 봤을 때 이런 분의 이 정도 실력의 강론을 만약 3년 동안 평일미사를 포함해 끊임없이 듣는다고 가정을 했을 때 저는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정말 혼신을 다하고 집중해 강론을 듣는다면 신앙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합니다. 그정도로 아주 훌륭한 강론입니다. 저는 실제로는 강론 원고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전달력입니다.
저는 언어를 가르친 선생으로서 그런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확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이런 가정은 성립을 할까요? 이런 강론을 3년 정도만 들으면 이 정도 비약적인 신앙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면 실제 이걸 말씀하시는 신부님은 더 변화가 될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도 성립을 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희박한 게 사실입니다. 이건 교육의 하나의 이론이 있습니다. 쉽게 표현해 이렇습니다. 흔히들 이렇게 강론하시는 신부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내가 강론을 이렇게는 하지만 나도 강론대로 살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신부님도 자신이 한 강론대로 살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렇게 되면 그건 성인의 수준까지도 갈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부님이 성인사제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제의 강론으로 많은 신자가 더 훌륭한 영성을 발전시키는 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고 이건희 삼성 명예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삼성의 우수한 인재가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그런 표현말입니다. 강론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미사 전체 구조를 보면 형식면에서는 독서와 복음도 매일 다르지만 절차면에서 보면 전체 미사 구조는 동일합니다. 다만 강론만 큰 틀에서 보면 다릅니다. 그렇게 본다면 강론이 의미상 미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강론이 부실하다면 그 다른 부분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는데 그 상징성이 깨지는 것이 되고 무미건조한 미사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는 그렇지는 않지만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에 늘상 그 미사가 그 미사인 것처럼 별 차이를 못 느끼는 미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강론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면 마치 생기없는 조화처럼 생화를 보지 못하고 매번 조화를 하느님 대전에 봉헌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분명 꽃이 맞습니다. 근데 생명 없는 꽃을 봉헌하는 것이 됩니다. 저는 이렇게 비유를 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강론은 중요합니다. 그런 중요한 강론에 대해 저는 아주 강력하게 생각하는 주관이 있습니다. 원래 제가 이 묵상글 제목으로 달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제는 강론에 목숨을 걸어야 됩니다. 이걸 제목으로 잡으면 너무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완하한 것입니다. 근데 요즘 현실을 보면 이와 같은 신부님을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그냥 훌륭한 강론 정도에 머무는 수준입니다.
제가 오늘 언급한 신부님 같은 강론이면 정말 이런 강론은 좀처럼 듣기 어려운 강론입니다. 이분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아주 훌륭한 달란트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다. 모든 신부님이 이런 재능을 다 가지고 계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재능을 받을 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재능이 없다면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가 강론을 들었을 때 아주 훌륭한 강론이라고 자부할 만큼은 못하시더라도 사람들이 듣고 나서 " 이 신부님 강론은 뭔가 남는 게 없다" 이런 말을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1년 열두달 그런 말을 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정말 심각한 것입니다. 이건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고 제가 앞전에 저에게 상처를 준 그 사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와의 개인적인 불편한 관계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주변 신자들의 평가입니다. 저는 이 신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언급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고 앞으로 천주교의 미래를 생각해 언급한 것입니다.
주일 광고 때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내일 이 본당에서 새신부 첫미사가 있다고 합니다. 이 본당에서 배출한 신부인지는 제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내일 저녁에 있다고 합니다. 이 광고를 듣고 집에 가면서 한 묵상이었습니다. 화살기도를 한 것입니다. 부디 강론에 목숨을 거는 사제가 되시어 신자들에게 훌륭한 사제가 되어주십사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제 이 본당에서 미사를 하면서 집중을 하기 아주 힘들었습니다. 주변에서 약간 악취 같은 게 풍겨서 말입니다. 그래서 미사 마치고 돌아가면 이것에 대해 약간 경종을 울리는 글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이 글을 먼저 올리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사제는 강론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한번 강조를 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사제의 생명은 저는 가장 큰 생명은 강론 실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목 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이건 인간 세상 정치에 비유하면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물론 정치를 잘 하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정치를 잘한다고 해서 국민이 피부로 와 닿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선정을 잘 베풀 수 있는 지도자의 덕목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제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신앙적으로 말하면 이보다 더 좋은 목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무릇 양이 잘 성장하도록 영적으로 잘 보호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잘 이행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강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강론 준비에 소흘히 한다면 그 사제는 직무유기를 한 것입니다.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만약 사제에게 유보된 죄가 있다면 이 죄만큼은 하느님께서 단호히 엄벌에 처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강론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건 순전히 제가 그동안 묵상한 내용이고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 묵상글이기 때문에 맞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정상적인 사고로 생각을 한다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제님들에게 훌륭한 강론을 하실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히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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