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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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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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7:26 | 조회수106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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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책 읽는 것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은 빠르게 정보를 취득할 수 없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 취득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긴 영상 보는 것도 낭비라면서 짧은 쇼츠 영상만을 보려 합니다. 책은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어서 느리지만, 영상을 휙휙 지나가기에 빠릅니다. 그렇다면 기억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책 읽는 것은 느리기에 생각하게 되고 이로써 자기 주관이 생겨납니다. 또 책을 읽지 않으면 문해력이 떨어져서 정보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무슨 말이야?” 할 정도로, 정보 취득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핀란드는 15세 이상의 독서율이 83.4%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15세 이상의 독서율이 8.4%에 그칩니다. 머리가 좋아서 청소년기 문해력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책을 읽지 않는 25세 이상이 되면 곤두박질쳐서 55세 이상은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저는 40세에 노안이 왔습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컴퓨터 모니터 보다 책에 집중했습니다. 지금 눈이 더 나빠졌을까요? 얼마 전에 안과에 갔더니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노안이 와서 책을 못 읽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스마트폰 보는 것에는 집중하십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스마트폰을 보니 눈이 더 나빠집니다. 삶 안에서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즉, 밀 이삭을 뜯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문제일까요?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은 행위 자체는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 도둑질이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23장 26절에 따르면 이웃의 밭에서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로 허용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안식일을 지적합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뜯는 것은 ‘추수(일)’ 에 해당하고, 손으로 비비는 것은 ‘탈곡(일)’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문자적 준수를 생명처럼 여겼고, 예수님은 율법이 지향하는 생명과 자비를 중심에 두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인간을 옥죄거나 감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노동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쉼을 주며, 생명을 축복하기 위함 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뜻을 새기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기쁘게 지금을 살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 안에 머물면서 참된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십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을 잘 알면 알수록 자신을 더 많이 용서할 수 있다. (공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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