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월 20일 수원 교구 묵상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9:44 조회수72 추천수2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복음: 마르 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시고 쉬신 날(창세 2,2-3 참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조주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그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예수님 시대에 안식일은 세부 규정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사람들을 억누르는 짐이 되어 있었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을 트집 잡는 바리사이들의 태도는 그 단적인 예이다. 이에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27절)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의 참뜻을 되살리신다. 

 

예수님은 안식일 법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셨다. 안식일은 인간을 얽매는 날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날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데 있다.”(Adversus Haereses IV,20,7) 

 

곧,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 존중되고 회복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이다(마르 3,1-6 참조). 

 

교회는 안식일 대신 주일, 곧 주님의 날을 지킨다.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 창조를 여신 날이기 때문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2174 참조) 

 

“주일은 모든 신자에게 ‘주님의 날’로서, 주님을 찬미하며 공동체와 함께 성체성사를 봉헌하고, 사랑의 실천을 통해 살아가는 날이다.”(2177-2185 참조) 그러므로 주일은 단순히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사랑의 만남이며, 감사와 찬미 속에서 나 자신을 봉헌하는 기쁨의 날이어야 한다. 

 

나는 주일 미사에 ‘의무감’ 때문에 참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과의 만남을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 속에서 주일은 참으로 쉼과 회복, 사랑과 선행의 날이 되고 있는가? 혹시 나는 현대판 율법주의에 빠져, 형식만으로 주일을 지키고 있지는 않은가? 

 

안식일은 생명을 위한 날이며, 주일은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날이다. 주일을 “두려움의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초대”로 받아들이고, 감사와 찬미, 봉헌과 선행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일을 통해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르 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시고 쉬신 날(창세 2,2-3 참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조주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그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예수님 시대에 안식일은 세부 규정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사람들을 억누르는 짐이 되어 있었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을 트집 잡는 바리사이들의 태도는 그 단적인 예이다. 이에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27절)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의 참뜻을 되살리신다. 

 

예수님은 안식일 법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셨다. 안식일은 인간을 얽매는 날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날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데 있다.”(Adversus Haereses IV,20,7) 

 

곧,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 존중되고 회복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이다(마르 3,1-6 참조). 

 

교회는 안식일 대신 주일, 곧 주님의 날을 지킨다.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 창조를 여신 날이기 때문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2174 참조) 

 

“주일은 모든 신자에게 ‘주님의 날’로서, 주님을 찬미하며 공동체와 함께 성체성사를 봉헌하고, 사랑의 실천을 통해 살아가는 날이다.”(2177-2185 참조) 그러므로 주일은 단순히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사랑의 만남이며, 감사와 찬미 속에서 나 자신을 봉헌하는 기쁨의 날이어야 한다. 

 

나는 주일 미사에 ‘의무감’ 때문에 참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과의 만남을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 속에서 주일은 참으로 쉼과 회복, 사랑과 선행의 날이 되고 있는가? 혹시 나는 현대판 율법주의에 빠져, 형식만으로 주일을 지키고 있지는 않은가? 

 

안식일은 생명을 위한 날이며, 주일은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날이다. 주일을 “두려움의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초대”로 받아들이고, 감사와 찬미, 봉헌과 선행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일을 통해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전삼용 신부님_율법의 존재 목적은 이웃을 심판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얼마 전에 따뜻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인천 어느 마트에서 삼십대 아빠와 열두 살 초등학생 아들이 어설프게 우유 2팩과 사과 6개를 훔치다 마트 직원에게 적발되어 경찰에 인도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몸을 벌벌 떨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빠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택시 운전사였습니다.

 

그러나 당뇨와 갑상선 질환 등 병에 걸려 반년가량 일을 하지 못해 수입이 전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됐지만, 아빠와 아들, 할머니, 7살 막내아들까지, 임대 주택에 사는 네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실제 아빠와 아들은 이날 하루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한 상태였고 아빠는 아이들이 굶주림을 호소하자 결국 범행에 나서려 했던 것입니다. 

 

 

 

마트는 이 사실을 알고 즉시 신고를 취소했고 경찰은 이 부자를 훈방조치하고 가까운 식당에 데려가 국밥을 대접했습니다. 

 

 

 

국밥을 대접한 인천 중부경찰서 소속 이재익 경찰관은 “아침 점심도 다 굶었다고 그러니까, 요즘 밥 굶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라며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진짜 따뜻한 손길들은 이후에 이어졌습니다.

 

국밥을 먹고 있던 아빠와 아들의 식탁에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왔고, 느닷없이 식탁에 흰 봉투를 두고는 그대로 식당을 나가버린 것입니다.

 

그 봉투 안에는 현금 2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이날 마트에서 경찰에 붙잡혔던 아빠와 아들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손님이었습니다. 

 

 

 

빵 몇 개 훔쳐서 오랜 세월을 징역을 살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여도 편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법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좁은 의미로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고, 넓은 의미로는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 뉴스에 나온 사람들은 법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고 모두가 행복하게 끝났습니다.

 

무엇이든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면 자기 목적대로 사용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다.

 

배가 고파서 남의 밭에 들어가 밀을 훔쳐 먹은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율법과 남의 재물을 도둑질해서는 안 되는 율법을 동시에 어기고 있었습니다. 

 

 

 

모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심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하시며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있는 당신 제자들을 감싸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정신은 모르고 율법만 지키려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법이 왜 생겼는지 알지 못하면 그 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합니다.

 

법이 생긴 목적과 반대로 사용합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칼이 인간을 해치는 용도로 쓰이게 될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사용할 때 그것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물어야합니다. 

 

 

 

왜 율법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부터 율법은 존재했습니다.

 

바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법이었습니다. 

 

 

 

그 법은 왜 생긴 것일까요?

 

그 율법을 어기면 결과적으로 이웃을 심판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어긴 아담과 하와는 그 죄책감을 합리화하기 위해 하느님과 이웃을 심판합니다. 

 

 

 

아담은 하느님께서 괜히 여자를 만들어주셔서 그 여자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율법을 잘 지켰다면 이웃을 심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존재하게 된 목적은 이웃을 심판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율법으로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였습니다.

 

이웃을 심판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만드신 율법을 역이용하여 이웃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이웃을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지켜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그 율법을 지켜서 주님께서 칭찬해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 율법을 지켜야만 죄책감이 생기지 않아 이웃을 심판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목적을 잃은 칼이 얼마나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기억해야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이병우 신부님_제목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1.20) -일치주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2,27)

 

안식일의 본질인 사랑!

 

오늘 복음(마르2,23-28)의 제목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입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의 이 행위는 안식일에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규정과 탈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위반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2,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은 일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2,27-28)

 

예수님 말씀처럼 모든 법과 규정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법인 율법과 계명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율법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종종 법과 규정에 갇힌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계명에 얽매이고 계명을 지키기에 급급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법과 계명의 본질은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본질에 충실합시다!

 

어제 가톨릭 우리농 센타로 첫 출근했습니다.

가톨릭 우리농 활동은 생명 살리기 운동이며, 이 활동의 본질도 사랑입니다. 어제는 직원들과 함께 참기름도 짜고, 생명 물품도 팔고, 교구청으로 가서 영업활동(?)도 하면서 바쁘게 그리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참기름과 들기름과 생들기름을 원하시는 분들은 제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010-7141-5549)

 

(~1마카2,48)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