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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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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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24 | 조회수28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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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평일 매일 미사 참례를 합니다. 그런데 어제 복음의 내용은 주님이 제자들을 뽑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신부님의 강론 중, 유다를 뽑으신 장면에 대해서 강론하십니다. 신부님은 그 강론의 초입에 "왜" 라는 말씀으로 주님은 유다를 왜 뽑으셨을까? 라는 말씀하시길래 .. 저는 속으로 신부님이 많이 한가한 분이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완덕으로 가려면 극한 고통의 아픔을 거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로 인해서 그 죄로 물든 내가 정화되어서 순수한 영혼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어둔 밤의 극한 고통이 수반되는데 .. 그 과정이라면 구지 복음에서 왜?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왜? 라는 것은 중심이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왜?라는 것에 대한 물음의 답을 내 안에서 찾으려고 하다가 수없이 넘어집니다. 그래서 그 기간을 어둔 밤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도 없어 보이고 나는 괴롭고 어디로 가야 하나? 갈등은 배가 되는 시점입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것은 완덕의 길이요. 참 자유의 길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신앙에서 수동적인 신앙으로 넘어감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내어 맡김입니다. 신앙도 단계 단계가 있습니다. 능동적인 신앙은 나의 이성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신앙도 나의 이성 관점에서 바라보고 걸어가는 것인데 그곳에는 인간의 이성의 판단이 수반되는 오류가 있습니다. 그것이 능동적인 신앙입니다. 인간의 이성 판단에 따라서 신앙은 진일보 하지 못하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물게되어 있습니다. 수동 신앙? 나를 하느님에게 내어 맡김의 신앙?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나를 맡기는 신앙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임하셔서 그분이 이끄시는데로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주님이 임하셔서 당신의 일을 나를 도구 삼아서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스펙트럼으로 보았을 때 주님의 친척들이 오늘 복음에서 주님을 미쳤다고 평가 합니다. 영혼의 길을 알지 못하고 육적인 세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입니다. 신앙 과정 밖에서 바라보기에 당연히 나오는 것입니다. 육적인 관점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혼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쳤다고 말한 사람을 주님은 참 불쌍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상으로 오신 목적은 인간의 구원입니다. 구원 관점에서 보면 미쳤다고 한 사람들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인간의 입으로 말을 하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영혼에 갈망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구원은 나의 정당성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하느님의 자비심에 영혼이 구원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왜? 라는 마음을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 의탁하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질머지고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는 어느 상황이 올지 모르고 수없이 많은 세상이라는 변수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내려 놓고 항상 주님을 우선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느 상황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빛의 은총을 청하는 내가 되어야 겠습니다. 수도자들 혹은 신부 수녀들 참 보기에 기뻐 보입니다. 그안에는 영적인 어둠의 기 터널 속에서 투쟁이 있고 그 속에서 늘 분주히 전투 모드로 극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안에 있는 것이 정상인데 .. 그 과정 밖에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다시금 지금의 나의 신앙의 여정을 돌아 볼 수 있어야 겠습니다. 과정 안에 있는지 아니면 과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명이 붙어 있으니 그 자체로 정당성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내 영혼의 여정을 돌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야 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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