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조명연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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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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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24 | 조회수40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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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사람들은 제가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또 아무런 문제 없이 신부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많은 갈등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음이 미친 듯이 요동칠 때, 바다에 가서 하염없이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곤 했었지요. 잠시도 쉬지 않고 몸부림치는 파도의 모습에, 저도 저렇게 몸부림쳐야 함을 깨닫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태풍이 온다고 하면, 피해를 줄이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태풍은 왜 와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태풍은 필연적인 자연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풍으로 바다를 뒤집어 휘젓기에 생태계가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청소도 하고, 순환도 되고, 이를 위해 커다란 바람이 바닷속 저 아래까지 힘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태풍이 없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 때, 몸부림쳐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이 아닌, 실제 도움이 되는 움직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움직여야 우리와 함께하는 주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편하고 쉬운 일상 안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서 주님을 만나고 진하게 체험했다는 분을 많이 보게 됩니다. 분명히 어렵고 힘든 상황인데도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몸부림치면서 주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을 따르려는 마음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편하고 쉬운 길이 행복의 길인 것처럼 보이고, 주님과 함께하고 그 뜻을 따르려는 것보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삶이 지혜로운 삶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길이 진짜 행복의 길이 아님을,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십니다.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마르 3,20)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정도로 커다란 열정으로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열정입니까? 예수님 자기를 위한 열정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사랑의 열정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열정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할 가족조차 방해하고 있음을 “붙잡으러 나섰다.”(마르 3,21)라는 표현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미쳤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합니다.
가족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자기의 좁은 생각과 선입견으로, 하느님의 일을 미친 짓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그런 좁은 식견으로 하느님의 일을 잘못 판단하고, 세상의 일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몸부림치며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만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알베르 카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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