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6-01-24 조회수158 추천수4 반대(1)

요즘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면 힘의 정치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관세를 통해 경제를 지키겠다고 말하고, 이민자 단속과 추방을 통해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말하며, 베네수엘라와 그린란드 문제에서는 군사력과 힘의 우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정책처럼 보이지만, 이 선택들에는 공통된 언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강하고, 우리가 결정하며, 우리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는 많은 이들에게 안도감을 주지만, 동시에 깊은 질문을 남깁니다. 관세는 외부를 차단함으로써 내부를 보호하겠다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 비용은 결국 시민들의 물가와 생활비 부담으로 되돌아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가계의 숨통을 조이고, 일상의 여유를 줄입니다.

 

이민자 단속과 추방은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질서 아래에서 가족이 갈라지고, 아이들이 부모의 부재 속에서 불안한 밤을 보내는 현실도 함께 존재합니다. 군사력의 과시는 국가의 힘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더 큰 긴장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힘은 즉각적인 효과를 주지만, 그 대가는 조용히 삶의 자리로 스며듭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경을 높이고, 관세를 올리고, 군사력을 과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묻습니다. 그 선택 아래에서 누가 울고 있는지, 그 안정 아래에서 누가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구조보다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제도가 아니라 얼굴을 보라고, 숫자가 아니라 신음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1991823일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35년이 되었습니다. 1년이 365일이니 계산하면 12,775번의 미사를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미사는 성당에서 봉헌하였지만 특별한 미사 장소도 있었습니다. 성지순례 중에 봉헌했던 미사가 생각납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시나이산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적이 있습니다. 새벽 2시에 출발해서 시나이산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어둠이 걷히고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간 순례자들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했던 곳입니다. 저는 참된 행복을 선포했던 곳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한 순례자들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선포해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곳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20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이른 새벽에 십자가의 길을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 제대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무덤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돌아가셨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 생각납니다. 추기경님은 매년 성탄과 부활이면 의미 있는 곳으로 가셔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제가 살던 봉천동 달동네의 어린이집으로 오셔서 미사를 봉헌한 적도 있습니다. 상계동 철거민들의 천막으로 오셔서 미사를 봉헌한 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축성된 성전에서 주님의 제단에서 봉헌하는 것이 전례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를 삶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봉헌하는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지난 성탄 때입니다. 루게릭병으로 8년 동안 아파하는 형제님이 생각났습니다. 형제님은 몸은 점점 굳어가지만 웃음은 잃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미사를 보았지만 직접 미사 참례는 못 하였습니다. 저는 봉사자들과 함께 병실로 찾아가서 미사를 봉헌하자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기도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형제님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미사였습니다.

 

사제의 삶은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차는 비록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목적지를 향해서 갈 수 있도록 안내하게 됩니다. 사제의 삶은 세상이 주는 성공, 명예, 권력, 재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온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십자가, 희생, 헌신, 봉사의 삶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의 삶은 소중한 것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소중한 것들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픈 사람, 굶주린 사람, 헐벗은 사람을 돌보는 일이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제도를 삶으로 실현하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와 아름다운 장소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늘 우리 마음의 문 앞에서 우리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가난한 가정에서도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나듯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자신의 태도요, 자신의 의지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의 다리 친교의 다리 봉사의 다리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형제들 간에 사랑의 다리, 친교의 다리, 봉사의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에게 다리를 놓고 그 안에서 사랑을 친교를 봉사를 나눈다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합심하고 일치하여 같은 목소리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를 도와줄 때 우리는 커다란 힘으로 복음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러자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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