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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왜 그분의 강론은 폐부를 찌를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6-01-24 조회수85 추천수2 반대(0) 신고

 

약속한 대로 이 내용을 한번 공유하겠습니다. 좀 더 확실하게 제목을 달려고 하면 너무 길어 이 정도 선에서 했습니다. 원래 맨처름 정한 제목은 '폐부를 찌르는 강론'이었습니다. 이건 강론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이미 제목까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도 한번 이 신부님이 제가 다닌 본당에 오셔서 강론을 하신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그때도 알았지만 신부님은 이미 마치 처음에는 여자가 친정에 오는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알고 보니 예전에 아주 예전에 제가 있었던 본당에 보좌신부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계신 신자들은 다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는 지금처럼 강론이 훌륭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발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추측할만한 근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사실 보좌신부임에도 강론이 아주 탁월한 신부님을 봤습니다. 제 본당에 처음으로 서품을 받고 아마 첫보좌로 오셨을 겁니다. 정말 대단한 신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세례명과 함께 성함을 타이핑하다가 그냥 지웠습니다. 신부님과는 2년 정도 전에 통화를 한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제가 미국 가시는 걸 알고 가시면 우리나라에서 보는 특대 성경처럼 미국에서 사용하는 게 있으면 제가 돈은 다 지불할테니 부탁을 드렸거던요. 그때 신부님께서 다른 종류로 좋은 게 있다고 해서 보내주셨는데 제가 그때 원주교구 님의길 순례를 하는 시점에 풍수원성당 주차장에 텐트를 치는데 택배가 왔다고 해서 이게 아주 중요한 거라 저는 어쩔 수 없이 마산에 내려왔습니다. 신부님께서 항공편으로 보내 며칠 만에 왔습니다. 

 

우리교구가 지금은 수원에서 주교님이 내려와 이제 주교님이 계신데 오랜 시간 동안 공석이었습니다. 이때 이런 말도 돌았습니다. 이 신부님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신부님이 솔직히 체구가 그리 큰 편이 아닙니다. 체구만 좀 있다면 이런 신부가 주교가 됐으면 하는 그런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예전에 처음 신부였을 때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외모 자체에서도 똑똑하게 보입니다. 저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백프로는 아니지만 거의 99프로는 딱 사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직감적으로 머리가 뛰어난 사람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오랜 시간 사람을 무수히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 신부님이 가시고 다른 보좌신부님과 개인적으로 신학적인 주제로 신부님 방에서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신부님이 이 신부님을 언급했습니다. 선배 신부였던 것이었죠. 제가 그 신부님에 대해 어떤 면을 언급했는데 신부님이 확실히 제 의견에 동의를 했습니다. 제가 그 신부님에 대해 어떤 면을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저는 그냥 신자로서만 봤고 그 신부님은 당연히 후배이니까 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제가 그런 면을 파악한다고 했을 때 조금은 놀라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이 신부님의 강론 특징은 원고 없이 하십니다. 원고 없이 한다고 해서 훌륭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복음에 대한 확실한 맥을 잘 짚고 그 맥을 간결하게 잘 전달하시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암기해서는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암기해서 할 수도 있는데 암기를 해서 하는 강론이라면 내용이 부자연스럽게 됩니다. 암기를 하지 않고 그 맥을 관통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강의를 해 본 사람이라 확실합니다. 일단 그런 맥 자체를 잘 볼 수 있다는 것도 강론을 잘 할 수 있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은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능 영어 시험에 주제를 찾는 문제처럼 지문을 읽고 그 주제를 잘 파악하고 또 요지 문제는 요지를 잘 파악해야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출제하는 의도는 어떤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잘 찾는 능력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왜 중요할까요? 학문을 하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잘 습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이해를 하면 신부님들도 성경을 봉독하고 묵상했을 때 단순히 그날 주어진 복음만 보고 그 내용 안에서만 생각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밖에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깊은 강론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삼천포로 약간 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제가 앞으로 설명을 할 내용에 대한 배경을 설명드린 것입니다. 다시 이웃 본당 신부님 이야기로 이어나가겠습니다. 이 신부님의 강론은 필력과 문장력이 뛰어나서 뛰어난 강론이 아닙니다.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제가 들어보면 특이한 기법이 있습니다. 그 기법이 상당히 많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걸 묘사해보겠습니다. 처음에 만약 복음을 미리 알고 간다고 전제했을 때를 가정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초반에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이게 오늘 복음과 어떻게 연결이 될지를 말입니다. 어떤 사건 사건 하나를 예를 듭니다. 세상사 일입니다. 그 하나 하나의 예에서 일단 우리의 양심을 먼저 터치합니다. 1차 자극을 가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에서 또 한 번 자극을 가하십니다. 더 찔림이 올것입니다. 이러시다가 돌연 갑자기 복음으로 선회를 하십니다. 대개 보면 긴 이야기를 하실 때도 있지만 짧게 잠시 터치하고만 지나가십니다. 복음은 짧게 언급을 하셨는데 그 여운이 오래가는 게 특징이 있습니다. 

 

이게 왜 그럴까요? 만약에 성경만 가지고 언급을 계속 그 주제로 했다면 많은 여운을 남기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의 예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신자들의 마음을 자극한 상태에서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복음의 내용과 맥이 같다는 걸 이해시켜줄 때 그때 비로소 성경 복음에 나오는 내용이 진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제가 파악한 이 신부님의 강론 기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단순히 그냥 보통 우리가 아는 복음 내용의 사실만을 알아서 되는 게 아닙니다. 이 복음의 내용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을 시켜야만이 잘 이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만 그게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그런 고민이 없이 한다면 그건 단순히 성경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강론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신부님의 강론을 들을 때 그런 지식을 들을려고 강론을 듣는 게 아닙니다. 그건 얼마든지 책을 통해서도 알려면 알 수 있고 또 조금만 부지런하면 검색만 해도 다양한 자료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조금 노력하면 알 수 있는 거에 불과하지만 강론에서는 세상에도 없는 걸 신부님의 고뇌로 이루어진 묵상을 바탕으로 해서 신자들에게 울림이 되는 그런 강론을 신자들은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강론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로지 미사 참례 후에 영성체하면 그 자체로만 가지고 그게 모든 축복과 은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중요하지만 그건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가지고 백날 성당 다녀도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는 맨날 죄로 기우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그렇게 됩니다. 그 본성을 억제를 하고 또 저지를 시키기 위해서는 죄로 기우는 우리의 마음을 자극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자극은 죄책감을 주기 위한 자극이 아닙니다. 경고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경고를 받지 않으면 세상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영적으로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자극이 진정한 자극으로 되기 위해서 바로 뼈때리는 훌륭한 강론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론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절감하는 신자나 신부님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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