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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25일 수원 교구 묵상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6-01-25 조회수73 추천수2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회개와 하느님 나라

 [말씀]

 

■ 제1독서(이사 8,23ㄴ-9,3)

 

다윗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솔로몬의 사망과 함께(주전 933년)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갈라지며, 이 가운데 북 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합니다. 즈불룬 지파와 납탈리 지파가 속해 있던 북 이스라엘 왕국의 주민들이 아시리아로 유배를 떠났을 때, 남 유다 왕국의 예언자 이사야는 머지않아 북 왕국의 주민들이 해방을 맞이하리라 예고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큰 빛”으로 개입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제2독서(1코린 1,10-13.17)

 

사도 바오로가 직접 방문하여 선교하고 교회를 세운, 그리스의 항구도시 코린토의 교회들은 견고한 믿음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각 교회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 예를 들어 바오로, 아폴로, 케파(=베드로) 등을 내세워 우월성을 주장했으며, 이는 결국 교회 분열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강하게 질타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러한 분열 조짐입니다. 오로지 한 분,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 계실 뿐이며, 다른 이들은 그분 말씀의 선포자들일 뿐임을 역설합니다.

 

■ 복음(마태 4,12-23)

 

세례자 요한이 체포되자, 예수님은 북부의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이 지방은 즈불룬과 납탈리 등 여러 부족이 뒤섞여 있어, 소위 순수한 혈통의 소유자들로 자처하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으나, 예언자 이사야는 바로 이 지방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비칠 것임을 예고했었습니다(제1독서 참조). 정녕 이들은, 특히 순수한 어부들은 이 빛을 알아보았으며, 빛으로 오신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립니다. 주님은 이들을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쳐 새 이스라엘 백성의 모범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새김]

 

예수님의 주 활동무대로 등장하는 갈릴래아는, 히브리말 ‘갈릴’의 라틴어식 표현으로서 본래의 뜻은 ‘(이방인) 지역’입니다. 이곳은 구약시대부터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어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자주 천대를 받던 지역입니다(제1독서). 구원의 ‘큰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바로 이곳을 우선적인 복음전파 대상으로 삼으십니다.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이방 민족들을 포함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을 탄생시키기 위함입니다.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을 불러 모아 선교 사명을 내리신 곳도 바로 이곳 갈릴래아 ‘이방인 지역’입니다(마태 28,16-20절 참조).

 

 

 

예수님은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는 말씀으로 당신의 복음 전파 사명을 여십니다. 그분은 정녕 오시기로 되어 있던 구세주이시나, 그분을 알아보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회개, 곧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보고 듣고 행동하는 방식을 뒤바꾸어 놓으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서 그분은 호숫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바꾸시기 위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제자로 부르십니다. 모든 것을 버려야,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따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신앙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거저 받은 우리가 신앙인으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을 늘 마음 한가운데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일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너무나 비좁고 초라한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잡다한 것들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이 한 주간, 비우고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하느님 나라 선포의 길에 들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 신앙인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4,12-23: 예수님의 전도 시작 

 

1.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오늘 제1독서(이사 8,23-9,3)와 복음은 공통으로 “큰 빛”의 주제를 전하고 있다. 빛은 구원, 생명, 기쁨을 상징하며, 어둠은 죽음과 단절을 의미한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인용한 “죽음의 그늘진 땅에서 큰 빛을 보았다.”(16절) 예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를 비추는 의로움의 태양이시다.”(Enarrationes in Psalmos 26, II,2) 즉, 그리스도의 빛은 특정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비추는 구원의 빛이다. 그렇기에 갈릴래아, 즉 “이방인들의 땅”에서 전도가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원이 온 세상에 열렸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2.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예수님의 첫 설교는 짧지만, 모든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다.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17절). 하늘나라는 단순히 미래에 올 세상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 하느님의 통치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회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회개는 죄의 약이며, 자비의 문이자, 하늘에 이르는 길이다.”(Hom. in Matthaeum, XV,4) 즉, 회개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내적 전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3. 제자들의 부르심과 따름

예수께서 부르신 첫 제자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마태 4,20), 배와 아버지까지 떠났다. 이는 단순한 직업 전환이 아니라, 삶 전체의 전환, 곧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제자들의 ‘즉시 따름’을 묵상하며 말한다. “그들은 듣고 곧 따랐지만, 우리는 듣고도 머뭇거린다.”(Sermo 100,2) 제자들의 결단은 우리에게 신앙의 용기를 일깨워 준다. 그리스도를 따름은 곧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는 것이며, 그분과 함께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여정이다(마태 16,24). 

 

4. 교회의 일치와 회개

제2독서(1코린 1,10-13.17)에서 바오로 사도는 갈라진 공동체를 향해 일치를 호소하고 있다. 교회는 특정 지도자나 인간적 권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공동체라는 것이다(1코린 3,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참된 일치 운동은 내적 회심 없이는 있을 수 없다.”(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Unitatis Redintegratio 7항) 즉,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사랑의 부족, 곧 참된 회개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가 하나 되게 하소서.”(요한 17,21)라고 기도하신 것은, 교회의 본질이 바로 일치이기 때문이다. 

 

5.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청합니다. 빛을 받아들이기-그리스도의 빛에 마음을 열고, 삶을 새롭게 보기; 회개하기-내적 전환을 통해 삶의 방향을 바꾸기; 하나 되기-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는 모든 분열에서 돌이켜,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을 실천하기이다. 

 

6. 맺음말

갈릴래아에 비친 그리스도의 빛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비치고 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머뭇거림 없이 주님을 따르고, 회개와 일치를 통해 그분의 나라에 합당한 증인이 되어야 하겠다. “빛 가운데 걸어가는 이가 어둠에 머물지 않으리라.”(요한 12,46) 그리스도의 빛을 따르며, 참된 회개와 일치 안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한상우 신부님_'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마태 4,14) 

 
말씀의 성취는
언제나 인간의
계산을 넘어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상이 아니라
하느님 
당신 자신이며,
살아 계신
사랑의 
현존입니다. 
 
말씀의 가치는
사람을
살리는 데서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말씀은
인격이 되셨고,
삶으로 이어질 때
완성됩니다. 
 
문자는
멈출 수 있지만,
말씀은
멈추지 않습니다. 
 
말씀은 행위를 
통제하기보다
사람을
형성합니다. 
 
성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말하고, 일하고,
관계 맺는
모든 자리에서
말씀은
우리를 이끕니다. 
 
말씀은
이해 속에서보다
실행 안에서
참된 의미를 얻습니다. 
 
신앙을 삶에서 
분리하지 않고,
삶 전체를
거룩하게
변모시킵니다.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을 빚고,
역사를 관통하며,
흩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하느님 백성의
뿌리가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직접 주신 계시이며,
삶 전체를
하느님께 맡기도록
부르시는
절대적 부르심입니다. 
 
해외 원조는
먼 곳에
손을 내미는 일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 안에서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 삶을 내어놓는
신앙의 힘찬 응답입니다. 
 
말씀은 인격의

참된 실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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