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송영진 신부님_<“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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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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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25 | 조회수53 | 추천수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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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4,12-23).”
1) 우리 교회는 ‘위령 기도’를 할 때 시편 130편을 바칩니다.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시편 130).”
시편 130편을, 연옥 영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기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많은 경우에
기도하는 사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기도’가 됩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 때문에, 또 ‘인생의 덧없음’
때문에 영혼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 때가 많습니다.
어떤 큰 사고나 큰 병이나 불행한 일이 갑자기 닥치면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하고,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답답함과 울적함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인생에 어둠은 전혀 없고, 온통 환하기만 하고,
완벽하게 행복하고 편안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사실 인간은 누구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는’ 존재입니다.
그런 인간들을 향해서 마태오 사도는 “참 빛이시고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셨다.” 라고 선포하고 증언합니다.
신앙인은 그 증언을 믿는 사람이고,
빛이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참 생명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2)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가 어둠 속에 있음을 부정하는,
또는 자기 안에 어둠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어둠 속에서 살다가
끝날 것입니다(요한 9,41).
또 빛이 아닌데도 빛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세속의 권력이나 재물을 하느님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또 자기가 빛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독재자들도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3) 원래 1월 25일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어둠 속에서 살다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어둠에서 해방된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박해자 사울’로 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직접 그를 부르셨는데, 그는 예수님을
만난 뒤에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사도 9,9).
앞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를 가두고 있었던
영혼의 어둠을 상징하고, 사흘은 자신이 얼마나 짙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성찰하고 깨닫고
회개한 시간을 상징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보내신 하나니아스에게서 안수와
세례를 받은 다음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은
눈을 뜬 다음이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은 눈을 뜬 사람이,
또 빛을 받아들이려고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하게 됩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서, 뜨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거부하고,
어둠 속에 있겠다고 고집 부리는 사람입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루카 6,39).”>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3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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