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연중 제3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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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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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1-27 | 조회수72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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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간 화요일] 마르 3,31-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오늘의 제1독서를 보면 다윗 임금은 잃어버렸던 ‘계약의 궤’를 되찾아 주님의 집에 모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춥’니다.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지요.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체면과 허례허식 따위는 다 내려놓고, 하느님과의 관계에만 온전히 몰입하여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춤을, 그분을 향한 경외와 사랑을 맘껏 표현하기 위한 춤을 혼신의 힘을 다해 추었던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은 보지 못하고, 그분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만 신경 썼습니다. 인간적인 관습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권력자들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까봐, 그로 인해 자기들이 피해를 보게 될까봐 염려하여 예수님을 제지하고자 그분을 찾아가지요.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이 오늘 복음의 초반부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밖’에 버티고 서서, 자기들 쪽으로 좀 오라고 그분을 부릅니다. 윗 사람이 아랫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제 뜻대로 통제하려 드는 모습입니다. 그처럼 고집을 부리고 교만하게 구는 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에, 예수님은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당신 주위에 앉아있던 이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그분 가까이로 다가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어 힘들고 괴로운 만큼 구원받고자 하는 갈망이 크고 간절해서, 누구보다 그분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이야말로 당신의 참된 가족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선언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그분 나라에서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보증과도 같지요.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주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 울타리 ‘밖’에 버티고 서 있습니까? 주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분께 내가 원하고 바라는 걸 일방적으로 ‘말하기만’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뜻’을 따라 살겠다고 고집부리고 있습니까?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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