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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아버지의 인생 교육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6-01-28 조회수69 추천수2 반대(1) 신고

 

한국 나이로 변경된 나이가 아닌 예전에 통용된 전통식 한국 나이로 쉰다섯이 됐습니다. 편의상 신정을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엄밀하게는 구정을 기준으로 하긴 합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저의 인생 가치관을 정립해 준 것은 아버지의 생전 가르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 외에 굳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들은 스님의 법문, 또 청년 시절엔 교회 목사님의 설교, 마흔에 영세를 받고 천주교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피정센터에서 들은 강론 본당에서 하는 강론과 지금까지 살면서 한 독서와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위인들이 남긴 삶 이게 전부였을 겁니다. 그래도 지금 제 인생의 확고한 가치관은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평범한 범부였습니다. 이름 없는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외형상은 평범하셨지만 아버지는 삶 그 자체가 성자에 가까웠다고 해고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버지의 원래 태어난 곳은 경상도 산청이었지만 고향은 제가 태어난 진주 시골 마을입니다. 어려서 독자였고 할아버지께서 아버지 일곱살에 돌아가셔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전라도로 이주해 전라도에서 정착하셨고 전라도에서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누나 하나 형 넷 이렇게 6남매를 두셨습니다. 바로 위 형이랑 터울이 아홉살 납니다. 다 전라도에서 태어났고 저랑 아버지만 고향이 경상도입니다. 아버지가 고향으로 가 살고 싶어 전라도에서 정리를 하고 제가 태어난 마을로 이사를 오셨는데 그때 같이 살던 마지막 사시던 곳이 진안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원에서도 오래 사셨습니다. 그곳 마을 사람들이 이사를 하는 날에 다 눈물바다였다고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삶 자체가 정말 사람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을 만큼의 위인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동네에서 40년 전 이웃집 누나를 만났습니다. 제가 눈썰미가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40년 전 누나를 바로 알아봤습니다. 이 누나에 관한 이야기도 한번 하겠습니다. 이 누나 어머니는 제 아버지를 엄청 존경하셨습니다. 단순히 동네 어른으로가 아니고 정말 존경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 밑에서 아버지의 삶을 보며 아버지처럼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처럼은 아닙니다. 택도 없습니다. 제가 봐도 아버지의 삶은 고결하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건 어느 분이 제 글에 댓글을 남긴 것 때문에 이런 걸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댓글 때문에 아버지가 무척 생각납니다. 왜 그 댓글 때문에 아버지가 생각나는지는 생략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하나만 언급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교육을 시킨 것이 있습니다. 우리집은 딸이 귀한 집안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하는 일을 어려서부터 다 했습니다. 아버지는 남녀 차별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안에 여자가 귀해도 남자는 어떠한 곳에서도 여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대상은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여자이기만 하면 그 어떤 여자도 다 해당됩니다. 그렇다고 그럼 남자는 무시해야 된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비유를 하자면 동등한 상황에서 남녀 둘 위난에 처했는데 한 사람을 구해야 한다면 아버지는 여자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이 비유를 통해 어떤 개념을 저에게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 남자가 힘이 있다고 그 힘으로 여자를 압박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억울한 일이 있는 한이 있어도 그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래야 남자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힘이 있다고 남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종교적인 그런 사상도 없으셨습니다. 물론 절에 가시긴 하셨지만 그저 단순히 마음을 수양하는 그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이런 아버지의 삶 철학 때문에 제 인생의 여자를 바라보는 철학이 여기서 기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여자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청년 때에 세운 철학이었습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결혼 전부터 확고하게 정립을 하고 굳게 생각을 해야 그런 상황이 되어도 흔들림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이런 건 교육하지 않습니다. 뭐냐하면요 앞으로 가정을 가지게 되면 절대 딴 여자한테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같이 사는 동안은 말입니다. 만약 그 여자가 세상을 떠난 다음엔 그다음엔 그건 그때 알아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만약 재혼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 10년은 혼자 살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는 최소한 함께 산 여자에 대한 도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종교적인 신념 같은 게 없으셨습니다. 인간의 삶이 죽고 난 후에 내세와 같은 건 배제하고 말입니다. 있든 없든 또 그 여자가 저 세상에서 보고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거와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음에도 그렇게 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성장을 해서 그런지 어떤 면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대단한 생각을 하는 면이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듣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단해서 대단한 게 아니라 보통의 사람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을 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행동이 싸이코 같은 그런 게 아니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동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도 하기 전에 이미 확고하게 다짐한 게 있습니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 후에 제가 어떤 이유로 먼저 죽게 되면 아내에게 유언으로 마음을 천천히 정리를 하고 좋은 남자를 찾아서 결혼을 해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입니다. 만약 역으로 반대의 사정이 있었을 경우에는 아내에게 이렇게 남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절대 재혼을 하지 않을 테니 하늘에서도 잘 지켜죠. 약간 아이러니한 상황이고 잘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왜 이런 사고를 하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아버지의 교육철학이 어쩌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한 여자만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10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셨지만 말입니다. 근데 그럼 역으로 왜 아내는 재혼을 하라고 그것도 조금 마음을 추스린 후에 말입니다. 이건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소설 형식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먼저 죽어서 만약 하늘나라에서 아내가 재혼해 다른 남자를 만나 나를 잊고 사는데 그것도 행복하게 사는 걸 보게 된다면 기분이 좀 그럴 것 같다는 상황입니다. 인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살면서 죽게 돼 여자를 책임 못졌기 때문에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도 대신해 제 책임을 대신 해 주게 되면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혼자서 쓸쓸하게 사는 걸 하늘에서 보는 게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미묘한 감정이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그 남자를 위해서 빌어줄 것 같습니다. 내 대신 내 아내를 행복하게 해달라고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눈물은 날 것 같아요. 왜 눈물이 날지는 조금 공감이 되시는지요? 내가 행복하게 해줬으면 좋은데 다른 남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인 것이죠. 그 상황이 슬픈 것이지 딴 남자랑 사는 그 자체가 슬픈 게 아닌 것이죠. 

 

왜 이런 걸 언급하고 묵상글을 올리는지 그 이유는 우리는 이를 통해 물론 저의 개인적인 가정사 이야기와 개인 철학이긴 하지만 신앙 안에서 생각해봐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에 대한 어떤 절대적이고 확고한 믿음 하나는 자기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이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다고 할 정도여도 그건 괜찮은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으면 절대 하느님을 등한시할 수 없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없으면 남자가 이 여자 저 여자 찾아다니며 더 멋진 여자 없나 하고 기웃거리며 다니는 사람처럼 세상도 관심도 가졌다가 하느님도 관심도 가졌다가 하는 이중 생활을 하는 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세상을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된 하늘나라에서 사는 게 아니고 발을 세상에 딛고 세상 속에서 사는 속인이고 몸은 세상에 있지만 그 마음은 하늘을 보며 살아야 되기 때문에 오직 세상의 것은 덧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게 중심을 하늘에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향해 가는 항로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하늘나라까지 완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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