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전삼용 신부님_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수천 명의 안식처가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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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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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9:07 | 조회수82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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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농부가 밤낮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 마침내 하늘의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만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맛보는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행복한지,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 곁에 누군가 와서 편안히 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원리를 심리학적으로 꿰뚫어 본 사람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게 한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환자는 독한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지만, 아들러는 아주 기이한 처방전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이 이 처방을 따른다면 2주 안에 완치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실천하십시오." 사실 이 말이 모든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우울과 불행의 본질은 자기 몰입(Self-obsession)입니다. 온종일 나, 내 상처, 내 결핍, 내 기분만 생각하면 영혼은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남을 위한 쉼터가 되려고 고민하는 순간, 시선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옮겨갑니다. 그 순간 자아의 감옥 문이 열리고 해방감, 곧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그 좁은 감옥에서 꺼내기 위한 탈출구입니다.
실제로 마더 데레사 수녀님에게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한 귀부인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은 그녀에게 설교하는 대신,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돕게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냄새나는 환자들을 씻기고 먹이면서 그녀의 우울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나만을 위할 때 세상은 뺏고 뺏기는 정글이지만, 남을 위해 살 때 세상은 사랑이 흐르는 화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의 원리를 본능적으로 보여주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남미에 사는 설치류 카피바라입니다. 인터넷에서 카피바라 사진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이 동물 곁에는 항상 다른 동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쉬고 있습니다. 오리, 거북이, 원숭이, 심지어 천적인 악어조차도 카피바라 옆에서는 입을 다물고 평온하게 쉽니다. 그래서 별명이 동물계의 부처 혹은 친화력 끝판왕입니다.
동물학자들은 그 이유를 카피바라 특유의 공격성 없음과 느긋함에서 찾습니다. 카피바라는 먹이를 독점하려 하지 않고, 영역을 지키려고 으르렁대지도 않습니다. 즉, 동물들에게 있는 삼구(욕심과 본능)가 제어된 상태입니다. 그 무해한 평화로움이 주변 동물들의 경계심을 무장 해제시키고 쉼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내 곁에 사람이 없고 가족들이 나를 피한다면, 내가 너무 날카로운 욕심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기적인 정글에서 건져내어 남을 위한 쉼터로 만드시려고 우리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행복의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먼저 말씀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자라려면 우리는 삼구(세속, 육신, 마귀)와 싸우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게으름을 이겨내며, 말씀 하나하나를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삼구는 나의 생존을 생각하는 욕망이고, 말씀은 타인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말씀을 매일 등경 위에 행동으로 올려놓는다면, 예를 들어 미소 짓기, 참아주기, 나누기 같은 작은 행위들이 밤사이에 하느님의 손길을 거쳐 자라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저절로(automatē) 자란다는 말은 하느님의 자동 시스템입니다. 내가 억지로 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면 영혼은 자동으로 넓어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내 영혼이 커지면, 어느새 내 곁에 지친 이웃들이 날아와 둥지를 틉니다. 내가 나무가 되어 그들에게 그늘을 내어줄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쉼터가 되는 길은 꼭 거창한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르멜 수녀원의 소화 데레사는 몸이 약해 거창한 단식이나 고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녀는 매일 아주 작은 말씀을 붙잡고 실천했습니다. 빨래터에서 옆 수녀가 더러운 물을 튀길 때 화를 내는 대신(삼구와의 싸움) 살짝 미소 지었습니다. 식당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을 불평 없이 먹었습니다. 짜증 나는 수녀님을 만날 때 가장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핀 하나를 줍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줍겠습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매일의 실천들이 쌓여, 그녀의 영혼은 거대한 쉼터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24세에 요절했을 때, 그녀의 영적 일기는 전 세계 수많은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가장 큰 겨자 나무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세라핌은 숲속 오두막에서 은수 생활을 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 먼 숲길을 걸어 그를 찾아왔습니다. 단지 그의 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얻으십시오. 그러면 그대 곁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이 구원(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 삼구의 욕망과 싸워 이기면 평화를 얻고, 그러면 굳이 전교하려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은 내 안의 평화 냄새를 맡고 모여듭니다. 카피바라 곁에 동물들이 모이듯 말입니다.
오늘 하루, 내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그 자리에 말씀을 채우십시오. 그래서 누군가가 "너랑 있으면 참 편안해"라고 말하며 내 곁에 머문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하다는,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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