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전삼용 신부님_낙원의 저주는 고통이 사라질 때 시작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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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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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2-01 | 조회수90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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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일론 머스크는 다가올 2040년에는 인간의 수보다 많은 100억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급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인간이 하기 싫은 모든 노동, 위험한 일, 심지어 귀찮은 가사노동까지 AI 로봇이 완벽하게 대신해 주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땀 흘려 일할 필요도, 육체적인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는 꿈같은 ‘지상 낙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미 이 완벽한 낙원의 결말을 시뮬레이션해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동물행동학자 존 칼훈(John B. Calhoun) 박사의 그 유명한 ‘유니버스 25(Universe 25)’ 실험입니다. 칼훈 박사는 쥐들이 살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천적도 없고, 질병도 없으며, 먹이와 물은 무제한으로 공급되고, 온도마저 쾌적하게 유지되는 그야말로 ‘쥐들의 천국’이었습니다. 고통과 결핍이 ‘0’인 세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쥐들이 폭발적으로 번식하며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개체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지자, 쥐들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 중 ‘아름다운 존재들(The Beautiful Ones)’이라 불리는 집단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짝짓기도 하지 않고, 다투지도 않고, 사회적 교류도 끊은 채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자신의 털을 다듬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털은 윤기가 흐르고 상처 하나 없이 매끈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죽어 있었고 영혼은 텅 비어 버렸습니다. 결국 이 완벽한 낙원에서 쥐들은 서로를 공격하거나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전멸했습니다. ‘고통’이 사라지자 ‘생명력’도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AI가 우리에게 줄 미래가 바로 이 ‘유니버스 25’가 될 수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기에 간절함도 없고, 슬픔이 없기에 위로도 필요 없는 세상. 그곳에서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들’처럼 겉모습만 매끈한 껍데기가 되어 멸종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선포하신 행복 선언, 곧 진복팔단은 이 멸종을 막을 유일한 해독제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주님께서는 그 결핍과 슬픔이야말로 우리를 영적으로 살아있게 만드는 유일한 숨구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배부른 돼지가 되어 죽어가느니, 고뇌하는 소크라테스가 되어 영원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초대하시는 ‘참된 행복’의 길입니다. 낙원의 저주는 자기를 극복하려는 고통이 사라질 때 시작됩니다. 그리고 진복팔단은 행복해지려면 고통을 선택하라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한 자매님이 면담하자고 찾아오셨습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셨고 평생 교편을 잡으신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신이 환시를 보고 환청을 들으며 신비스러운 꿈을 꾼다고 자랑하셨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그것은 100%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분의 표정에는 평화가 없었고, 삶의 열매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렸을 때 유체 이탈을 경험했고 신비한 십자가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대학 이후로는 30년 넘게 냉담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을 받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사제품을 받을 때 예수님의 음성을 딱 한 번 들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힘으로 살아갑니다. 하늘에서 오는 것은 영원한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감정을 남깁니다. 이 자매님이 그런 영적 환상에 빠진 이유는 행복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복권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할 자기 부정의 고통은 회피하고, 신비한 체험이라는 ‘영적 마약’만을 찾은 것입니다. 장차 AI 시대가 오면,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아도 되는 수많은 사람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자매님처럼 될 가능성이 큽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에 갇혀, 결국 고통으로 맺어지는 진실한 인간관계에서 멀어진 채 환상의 공간에서 부유하는 존재들 말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예수님의 행복 선언을 다시 외쳐야 합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고통을 통과해야만 만날 수 있는 구원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미자는 간병인으로 일하며 홀로 손자를 키우는 예순여섯의 할머니입니다. 그녀는 시를 배우고 싶어 문화센터에 다니지만, 좀처럼 시 한 줄을 쓰지 못합니다. 어쩌면 시가 나올 수 있는 순수함과 감수성을 너무도 오래 잃어버리고 살아왔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 찾아옵니다. 마을의 한 소녀가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소녀를 괴롭혀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 속에 미자의 손자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은 돈으로 이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려 합니다. 그 속에서 미자는 갈등합니다. 손자는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밥만 잘 먹습니다. 그렇더라도 유일한 혈육을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손자가 감옥에 가고 자기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미자는 진실을 감춥니다. 그러자 더 이상 시가 써지지 않습니다. 영혼의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어느 날, 미자는 죽은 소녀가 떠내려왔던 개울가를 지나게 됩니다. 마침 돌풍이 불어 미자가 아끼던 예쁜 흰 모자가 날아가 개울에 빠집니다. 모자를 건지려다 미자는 물에 젖습니다. 자신의 모자도 소중한데, 문득 저 차가운 물 속에서 그렇게 싸늘하게 식어갔을 소녀가 사무치게 불쌍해집니다. 그 아이가 느꼈을 공포와 차가움을 미자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 고통을 마주한 순간, 미자는 결단합니다. 그녀는 경찰에게 손자를 신고합니다. 뼈를 깎는 아픔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손자가 경찰에 잡혀간 뒤, 비로소 개울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생애 첫 ‘시’를 쓰게 됩니다. 시를 쓰게 되었다는 것은 마음이 깨끗해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라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자는 고통을 회피하여 지하로 숨는 대신, 고통을 끌어안음으로써 하늘로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고통을 통해 더 큰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영혼의 훈련소’입니다. 그렇지 않고 고통을 거부하면, 유니버스 25의 쥐들처럼 영혼이 소멸하거나 가리옷 유다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일만 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행복 선언은 “행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당하는 법을 배우라”는 명령입니다. 최근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웹툰 작가이자 방송인인 기안84와 배우 권화운 씨가 보여준 극한의 도전이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기안84는 아프리카와 북극을 달리는 도전에 이어, 이번에는 7시간이 넘는 지옥 같은 마라톤 코스 앞에서 결국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무릎을 꿇고 맙니다. 함께 뛴 배우 권화운 씨 역시 다리에 극심한 경련이 일어나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20km를 더 달리는 독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편안한 집에서 쉬면 그만일 텐데, 왜 스스로 지옥 같은 고통 속으로 뛰어드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이겨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희열, 즉 ‘나를 이겨냈다’는 벅찬 자존감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을 이기기 위해 선택한 고통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행복의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입니다. AI는 절대로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기꺼이 십자가라는 고통을 짊어지는 사람만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존엄한 인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거룩한 고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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