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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할머니가 돼도 내 맘 변치 않을게 누나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05:55 조회수64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묵상글을 하나 작성하려고 하다가 그만 예전에 짝사랑했던 누나가 생각나 그만 밤을 새고 말았습니다. 현실에서는 잊었는데 내 영혼 안에서는 잊지를 못하나 봅니다. 언젠가 성당 감실 앞에서 누나가 기도를 할 때 용기를 내 감실 앞에서 하면 내 진심을 더 알아줄까 하고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방패 삼아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시는 앞에서 말하는데 설마 거짓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한다면 제 진심을 믿어줄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을 가졌지만 그때 누나가 한 말 중에 정확하게 그 말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내용과 의도는 이랬습니다. 말이 되느냐고 이 말입니다. 누나는 기억을 할지 모르지만 분명 그랬습니다. 누나 상식으로써는 열두살이나 그것도 여자가 많은데 말하자면 어린 남자랑 그게(결혼)이 가능하냐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또 제가 처음에 고백을 했을 때 솔직히 문자로 고백을 했는데 아마도 많이 놀라웠을 겁니다. 제가 세례명을 가명으로 하겠습니다. 

 

저를 아는 본당 신자가 보면 다 알겠지만 그래도 가명을 하겠습니다. 안나로 하겠습니다. 저를 선교한 자매님은 안나 기분 좋겠는데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니 언젠가는 선교한 자매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마도 베드로가 어리니 나중에 혹시나 버림받고 제가 차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세주신 신부님도 언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결혼) 사람들이 안나를 어떻게 볼까 하고 걱정 안 하겠나 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이런 것도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때 성전에서 할머니가 돼도 내 맘 변치 않을게 하고 눈물로 애원했던 그 말을 지금도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문자에서도 그런 문자를 수도 없이 보냈지만 정말 나쁜 의미로 하는 건 아니지만 독하다고 할 정도로 한 번의 답장도 없을 정도로 정말 독했습니다. 차라리 그만 좀 해라고 그런 답장이라도 줬으면 하는데 그런 답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한 번 언젠가는 성당 로비에서 한 번 제 진심을 다 고백했지만 그래도 꿈쩍 안 했습니다. 차라리 싫으면 뭐 때문에 싫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라도 했으면 저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과감히 포기했을 겁니다. 사실 처음에 문자로 언지시 고백을 했을 때 요즘 말로 말하면 계속 씹었습니다. 초창기에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더라면 저는 바로 단념하고 말았을 겁니다. 제 성격상 그랬을 겁니다. 아무런 답장이 없으니 제가 이런 사실을 저를 선교한 자매님께 최초로 고백을 했습니다. 자매님과 저는 둘 다 이상한 소설을 쓴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아주 좋을 것이라는 소설입니다. 이게 결국 사단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상상이 계속 부풀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초기에 확실히 거절 의사를 했더라면 짝사랑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미 제 가슴은 계속 타게끔 만들어놓고 그러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밤을 샌 게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노래를 듣다 보니 그 가사가 또 옛날 그 애달픈 마음을 떠오르게 해 그만 이렇게 된 것입니다. ' 외로움을 마시며' 라는 가사가 제 마음을 후벼파는 것입니다. 1년을 그렇게 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깨끗이 머리로는 단념을 했습니다. 포기했습니다. 저도 포기를 한 줄로 알았는데 이게 머리로만 이성으로만 포기를 한 것이지 제 가슴은 포기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성당에서 식사 때 가까이에서 봤는데 누나 얼굴을 보고도 그때 이루어지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얼굴이 그때랑 비교해 보면 많이 변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두 번 다시는 생각도 나지 않고 해야 정상인데 솔직히 고백하면 그래도 생각나는 것입니다. 정말 미치겠더군요. 두 달 반쯤 전에 우연히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다가 신호등에서 가까이 나란히 마주쳤습니다. 인사도 할 그런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워낙 거부만 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사실 성당에서 마주치면 서먹서먹하니 그것도 힘들고 해서 한번은 "이제 깨끗하게 잊었으니 그만 누나 동생으로 지내면 안 될까요" 라고도 했습니다. 역시나 항상 그랬듯이 답이 없었습니다. 누나가 그때 거부를 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혹여 그때 나이도 어리고 해서 철없이 어떤 순간 감정으로 했다고 철부지 취급해서 만약 그랬다면 만약 이 이유 하나만으로 거절했다면 이제는 후회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보이지 않게 13년이라는 세월을 멀리서라도 제가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어쩌면 속으로 그때 베드로 저 사람이 한 말 " 할머니가 돼도 내 맘 변치 않을게 누나 " 이 말은 어쩌면 진심이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처음에 고백을 하지 않고 그런 감정을 보이지 않고 했더라면 누나랑 아주 잘 지냈을 겁니다. 

 

누나는 제가 한 달 교리를 받을 때 사실 저는 마지막에 한 달만 교리를 받고 영세를 받았습니다. 몇 년 전에 다른 성당에서 교리를 받은 것을 대충 가만해서 그렇게 얼렁뚱당 해서 받았습니다. 박도식 신부님 유명한 책 그 책을 완전히 혼자 통독을 하고 해서 그런 조건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제가 교리를 받을 때 누나는 복음화분과장을 맡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때는 결혼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냥 봉사하는 분이라고만 생각을 했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미혼이라는 사실과 함께 왜 미혼이었는지 그 사연을 듣고 안 후에 언젠가부터 조금 약간 연민의 감정 같은 게 싹이 튼 것이었죠. 왜 미혼이었는지 그 이유는 이 자리에서 밝히기엔 예의가 아니라 생략하겠습니다. 그때 그 연민의 마음이 제 마음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이루어졌다면 지금 행복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 저는 아마도 그때 누나를 좋아했던 그 마음 변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누나 동생하고 만나 이야기를 하면 남동생이 하는 말로는 여자는 남자보다 빨리 늙는다고 했습니다. 설사 그게 맞다고 해도 저는 그래도 변치 않을 거라고 확신을 합니다. 설령 늙었다고 해서 마음이 변할 것 같으면 애시당초 그때 제 나이 마흔에 영세를 받았고 해가 바뀐 시점에 고백을 했으니 마흔 하나라고 해도 쉰 셋인 누나를 보면 앞으로 몇 년 후면 나이가 어떻게 된다는 걸 제가 계산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그런 것도 계산하지 않을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돼도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좋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단순히 저의 개인적인 슬픈 짝사랑 사연을 넋두리하기 위해 한 게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할 수는 없고요. 저의 이런 사연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안목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원래 '충신과 간신'이라는 제목으로 묵상글을 하나 올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의 핵심이 바로 사람을 보는 안목입니다. 이 안목은 누구나 가지면 다 좋겠지만 특히 성당에서는 사목자는 사목을 하는 데 있어서 필수조건이라는 걸 묵상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언급하고 또 잘 이해를 하려면 이런 저의 개인적인 아픈 과거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도 있기에 한번 공유를 하는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 영세를 주신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본당을 떠나신 후에 지금은 은퇴를 몇 년 전에 하셨지만 10년의 세월을 천주교 4대 축일과 제 축일에 좋은 글과 함께 항상 보내주십니다. 이 사실을 몇몇 신자는 알고 있습니다. 또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몇몇 신자도 그렇게 신부님께서 보내주십니다. 저는 신부님과 고작 인연이라고 해봐야 불과 채 2년도 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고 또 저를 보는 본당 신자들도 저런 어린 놈에게 어떻게 신부님께서 그렇게 문자를 보낸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 의아해할 것입니다. 제가 제 입으로 그 이유를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 이유는 제가 우회해서 표현하겠습니다. 

 

저에게 영세를 주신 신부님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저의 특이한 면을 보셨고 또 제 마음이 신부님을 감동하게 할 만큼 따뜻한 놈이라는 사실을 신부님은 그걸 캐치하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저에게 비록 문자이지만 하찮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안목이라는 건 단순히 사람만을 보는 것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안목은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안목에 해당됩니다. 사목자는 군주에 비유하면 어떤 사목 위원이 충신인지 간신인지 구별을 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을 보면 이 자질이 부족하면 유능한 군주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목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목자는 신학과 성경과 같은 것도 많이 알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역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특히 인물 역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편 묵상글 '충신과 간신'에서 다시 한 번 더 이어 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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