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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삼용 신부님_봉헌의 목적; 나를 잊음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9:38 조회수89 추천수2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오늘은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날이자, 우리 자신의 초를 축복하며 봉헌하는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봉헌'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물건을 바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봉헌은 곧 '축성'입니다.

내 것을 하느님께 드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신비로운 교환입니다.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에 나오는 '거지와 왕' 이야기는

이 진리를 아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마을에 황금 마차를 탄 왕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왕이 자선을 베푸시면 내 가난도 이제 끝이겠구나!"

그런데 마차에서 내린 왕은 오히려 거지에게 손을 내밀며 뜻밖의 말을 합니다.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는가?"

거지는 당황했습니다.

줄 것을 기대했는데 달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는 망설이다가 자루를 뒤적거려 가장 작은 쌀알 한 톨을 꺼내 왕에게 주었습니다.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자루를 비우던 거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쌀더미 속에서 쌀알만 한 황금 조각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아, 내가 가진 것을 몽땅 털어 드렸더라면, 이 전부가 황금이 되었을 텐데!" 

 

봉헌은 하느님께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내 것을 드리고 무한한 하느님의 것을 돌려받는 거룩한 투자인 셈입니다.

우리가 아까워서 조금만 드린다면, 우리는 딱 그만큼의 축복만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봉헌이 축성이 될까요?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를 알렸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온 우주와 천사들이 숨을 죽이고 한 시골 처녀의 입술을 바라보았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허락을 기다리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마리아의 자궁에 강제로 잉태되신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이 몸에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자신을 봉헌하며 문을 열어드렸을 때, 비로소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제 삶에 오소서"라고 봉헌할 때, 우리 인생에도 똑같은 강생의 신비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주 봉헌금을 내고 기도를 바치는데도, 왜 내 삶은 거룩하게 축성되지 않는 것 같을까요?

하느님은 당신의 가장 귀한 자유를 주시고 자신을 잊을 만큼 겸손해지시는데, 정작 우리는 봉헌한다고 하면서도 내 것을 꽉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이나 쌀알이 아닙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내 손에서 힘을 빼는 것입니다.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 제자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 앞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어깨와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베토벤은 제자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으려다 멈추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힘을 빼지 않으면, 내가 너를 도울 수 없다."

제자가 깊은숨을 내쉬고 손에 힘을 빼며 스승에게 손을 맡기자(봉헌), 베토벤은 제자의 손을 이끌어

비로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건반을 꽉 쥐고 있으면 하느님은 연주하실 수 없습니다.

내 힘을 빼고 그분께 손을 맡기는 것, 그것이 봉헌이며 그때 내 인생은 명곡으로 축성됩니다. 

 

골프나 검도 같은 운동을 배우러 가면 코치들이 입이 닳도록 하는 말이 있습니다.

"회원님, 어깨에 힘 좀 빼세요. 힘 빼는 데만 3년 걸립니다."

초보자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온몸에 힘을 줍니다.

그러면 공은 빗나가고 칼은 무거워집니다.

반면 고수는 마치 채를 던지듯이 툭 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성인이 되어야지, 내가 봉사를 완벽하게 해야지" 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하느님이 쓰시기에 너무 뻣뻣합니다.

하느님이 휘두르시는 대로 휘둘려지는 유연함, 나를 잊은 그 부드러움이 영적 고수의 경지입니다. 

 

영화 '샤인'의 실제 모델인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라는 악마적인 난곡을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과 아버지의 압박 속에 정신 분열을 겪고 무너졌습니다.

그는 악보 하나하나를 정복하려다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되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그는 더 이상 잘 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웅얼거리며,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저절로 춤추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연주는 내가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음악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거야."

자신의 기교를 뽐내려는 자아를 잊고 음악의 신에게 손을 맡겼을 때, 사람들은 그의 연주에서 전에 없던 전율을 느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장 완전한 봉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를 잊음'입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지, 내가 얼마나 거룩한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을 잊고 우리에게 오시는 분을 맞기 위해 우리 자신을 잊는 일이 봉헌입니다.

중세의 아름다운 전설 『성모님의 곡예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간 한 곡예사는 라틴어 기도도 모르고 학식도 없어 늘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른 수사들이 멋진 성가와 필사본을 봉헌할 때, 그는 아무도 없는 밤에 성당으로 들어가 성모상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곡예'를 했습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물구나무를 서고 공을 굴렸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거룩한 성당에 있다는 사실도, 자신이 기도를 모른다는 사실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잊을 만큼 몰입했습니다.

오직 성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원장 수사가 "이런 신성 모독이 있나!" 하며 야단치려 뛰어들 때였습니다.

놀랍게도 성모상이 움직여 내려오더니, 자신의 푸른 베일로 땀 범벅이 된 곡예사의 이마를 닦아주었습니다.

우리가 봉헌해야 할 가장 귀한 제물은 쌀알도, 황금도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잘나고 싶다는 욕심,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고집, 이 모든 힘을 빼고 나를 잊어버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땀을 닦아주시고 우리 인생을 황금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우리 모두 어깨에 힘을 뺍시다.

그리고 나를 잊고 오직 그분만을 바라봅시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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