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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9:40 조회수78 추천수4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2/2) : 주님 봉헌 축일

* 독서 : 말라 3, 1-4

* 복음 : 루카 2, 22-40(또는 2, 22-32)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며, 또한 "축성생활의 날"입니다.

“축성생활이 어떻게 변화를 만드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콘솔라따 선교 수도원 소속으로 현재 교황청 축성생활부와 사도생활단 장관으로 있는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님과 살레시오회 소속으로 수도회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추기경이 작년(2025년)에 로마에서 열린 UISG모임에서 한 강의의 제목입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부터 ‘시노달리따스’를 주제로 개최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의 [최종문서](2024.10.26.)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축성생활은 고유한 예언자적 목소리로 교회와 사회에 도전을 제시하라.”

“오늘날 많은 축성생활 공동체는 교회와 세상을 위하여 예언자적 역할을 하는 상호문화의 실험실이다.”

그렇다면, 예언자란 누구인가?

<성경>에서 예언자란 무엇보다도 초월적이면서도 인격적인 하느님의 메신저로, ‘부름 받은 자’, ‘하느님의 사람’, ‘환시를 보는 자’,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 곧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대변자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기보다 지금 이 시대 안에서, 역사와 사회, 동 시대의 고통과 현실에 깊이 관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자적 목소리’를 우리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예언자적 인물인 시메온과 한나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께 깨어있음’‘사랑을 담은 귀 기울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강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다림에 충실할 때 감각이 더 예리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 일, 우리의 감각을 밝혀주시는 일을 하십니다.”(2022.3.22.)

“이 두 노인을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들은 인내로이 기다리며, 영적으로 깨어있고,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월도 그들을 약하게 만들지 못했는데, 그들의 눈이 늘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희망을 ‘거두지’ 않았습니다.”(2024.2.2.)

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보는지요? 시메온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그리스도를 뵙고 알아봅니다. 그리고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라고 말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믿음에서 나온 위대한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눈을 뜨게 하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고, 관점을 바꿉니다. ~이 시선은 겉모습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약함과 실패의 틈바구니로 들어가서 그곳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2022.2.2.)

오늘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인가?

그래서 ‘성령께 깨어있음’과 ‘사랑을 담은 귀 기울임’을 지니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시도록 하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눈이 늘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통해서도, 우리가 복 받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아니, 오히려 시련을 통해서 복을 내려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니 ‘축성의 삶’, ‘축복의 삶’은 어려움과 시련이 없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축복하시는 그분의 뜻에 봉헌하고 사는 일일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깨어 있으며 희망으로 기다릴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힘을 경이감과 감동으로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을 시메온과 한나에게 주셨듯이, 저희에게도 그 시선을 허락하소서. 아멘.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주님!

구원을 보는 눈을 열어 주소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게서, 알몸으로 매달린 십자가에서,

구원을 보게 하소서.

양팔로 제 삶의 무력함을 쳐들고, 구원과 자비의 찬미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무력함에서 흘러내리는 당신의 구원을 따라 관상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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