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월 2일 수원 교구 묵상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6-02-02 조회수91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병우 신부님_"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루카2,22) 

'봉헌의 삶을 살자!' 

 

오늘은 예수님의 부모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고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주님봉헌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 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탈출13,2)는 모세에게 이르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오늘 복음(루카2,22-40)은 '예수님의 봉헌 모습'과 '그 축복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직접 목격한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시메온과 한나는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가까이했습니다. 성전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 뵈옵는 은총이 주어졌고, '기쁨의 찬미가(시메온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봉헌은 이천여년 전의 일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일 우리를 위한 속량, 우리의 구원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어 오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인 미사'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나 자신을 너를 위해 온전하게 내어놓는 봉헌의 삶을 삽시다! 

 

'봉헌의 삶을 살자!' 

 

'봉헌의 삶'은 예수님의 코드에 나의 코드를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느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비오니, 사람이 되신 외아드님께서 오늘 성전에 봉헌되셨듯이, 저희도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저희 자신을 봉헌하게 하소서."(본기도) 

 

오늘은 또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축성 생활의 날'입니다. 기쁘게 봉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수도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 1마카7,7)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2,22-40: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Presentatio Domini)을 기념한다. 이는 율법에 따라 맏배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행위이자, 동정 마리아께서 정결례를 지키시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축일은 단순한 의무 이행이 아니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는 삶의 의미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1. 봉헌의 의미

 

율법에 따라 “태를 열고 나온 첫 아들은 모두 주님께 봉헌되어야 한다.”(루카 2,23; 탈출 13,2 참조) 하였다. 이는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봉헌은 단순히 의무적 제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시 그분께 돌려드리는 전적인 응답이다.”(Redemptionis Donum, 1984) 곧, 우리의 작은 기쁨, 고통, 희생까지도 하느님께 바칠 때 그것은 단순히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은총과 기쁨으로 변화된다. 

 

2. 시메온의 고백 – 구원의 빛

 

성전에서 의인 시메온은 성령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알아본다. 그는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30절)라고 찬미한다. 성 이레네오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시메온은 눈으로 아기를 보았으나, 그 아기 안에서 영원하신 하느님의 구원을 인식하였다.”(Adversus Haereses III,10,2) 그가 바라본 것은 단순한 유다의 위로가 아니라, 온 세상의 빛, 그리스도였다. “이방인들을 비추는 빛,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32절)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을 선포하는 선언이었다. 

 

3. 반대를 받는 표징 – 십자가의 신비

 

시메온은 예언한다. “이 아기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다.”(34절) 성 치프리아노는 이 말씀을 해설하며 말한다. “그리스도의 표징은 사랑의 표징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표징이다. 이는 십자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Epistula ad Donatum 6) 십자가는 믿는 자에게는 구원과 영광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걸림돌이 된다(1코린 1,23 참조). 따라서 봉헌의 삶은 고통과 대립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길이다. 

 

4. 성모 마리아의 고통과 신앙

 

시메온은 마리아께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35절)라고 예언한다. 교회는 이를 통해 성모님의 동반 고통과 구속 신비 안에서의 협력을 묵상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마리아께서는 구세주의 수난과 죽음에 깊이 일치하시며, 독특한 방식으로 구원의 신비에 협력하셨다.”(교회 58) 이로써 마리아는 단순히 아들을 봉헌한 어머니가 아니라, 교회와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한 신앙의 모범이 된다. 

 

5. 한나의 증언 – 기도의 삶

 

예언자 한나는 성전에서 봉헌되는 아기를 알아보고 기뻐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분을 증언한다. 그녀의 일생은 기도와 봉사로 가득 차 있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기도의 삶을 두고 이렇게 강조한다. “하느님께 봉헌된 영혼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 늘 기도로 그분과 결합되어 있다.”(Homiliae de Anna 3) 이는 나이와 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신자가 주님을 기다리고 만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결론 – 우리의 봉헌

 

주님 봉헌 축일은 단순히 과거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어져야 할 소명을 일깨운다. 우리는 시메온처럼 성령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우리는 한나처럼 기도와 봉사의 삶으로 구세주를 증언해야 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아버지께 대한 봉헌이다. 이 봉헌 안에서 모든 신자는 자기 자신을 봉헌하도록 부름을 받는다.”(529항) 오늘 아기 예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이 거룩한 신비 안에서, 우리도 우리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도록 초대받고 있다. 감사와 봉헌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김건태 신부님_비천한 마음에 피는 하느님의 영광

 

[말씀]

 

■ 제1독서(말라 3,1-4)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한 말라키는,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한 유다 백성이 또다시 종교에 대한 무관심, 다시 말해서 ‘될 대로 돼라’ 식의 성향에 빠져들자 이를 강하게 질타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독려해나간 예언자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앞서 길을 닦기 위해 파견될 사자(使者)를 예고합니다. 이 “계약의 사자”는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활동하며, 사람들이 주님께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엘리야가 예고됩니다.

 

■ 제2독서(히브 2,14-18)

 

유다인들의 일반적인 기대 속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는 대단한 인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자인 메시아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 버려져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초라한 인물을 통하여 주님은 구원을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 자기의 형제들을 하느님과의 참된 사랑의 관계로 인도하며,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 구원의 길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 복음(루카 2,22-40)

 

오늘 복음에서 루카는 자기의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줄곧 확인하고 펼쳐나갈 내용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사회적 강자들이 아니라 비천한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이들의 믿음과 실천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루어나가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시메온과 한나와 같은 비천한 마음의 소유자들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가장 탁월한 가치인 사랑에 온통 열려 있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본보기입니다.

 

[새김]

 

이러저러한 경력 쌓기나 직함 취득, 각종 수상 소식, 신문이나 방송 등 매스컴 등장 등 세속적 화려함은 우리의 마음을 끌며, 이러한 화려함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 대상 가까이 접근하여 대리 만족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러한 의식이나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일깨워줍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중심적 삶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과 거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분께 온통 열려 있음’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비천한 사람들의 마음에 당신의 빛을 비춰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축제, 초의 축제인 ‘주님 봉헌’은 이러한 가르침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유다교 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따르며, 나이 많은 시메온과 한나에게 영예스러운 직함이라고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이” 또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비천한 아기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이방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영광”을 내다봅니다. 마음이 비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마음이 비천한 이들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비천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를 세례성사를 통해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 손에 촛불을 하나씩 쥐여 주셨습니다. 그 촛불을 들고 세상을 밝혀야 할 사명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깊고 넓다 하여도, 작지만 영롱한 우리의 촛불이 모여 세상을 가득 채운다면, 그 어둠은 금시 사라지고 세상은 온통 빛으로 환할 것입니다. 한편, 초가 제 몸을 온전히 태워 주위를 밝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태우거나 억지로 태워, 그을름으로 주위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또한 주님께 축성을 받아 자신을 봉헌한 축성 생활자들, 곧 수도자들을 위한 날이기도 합니다. 사제 성소 이상으로 날로 격감하는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수사님들과 수녀님들 모두 축성 생활 안에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해 나가시도록 기도하는 하루 되었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