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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봉헌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치는 일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10:10 조회수75 추천수2 반대(0) 신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22-32)”

 

1)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바치신 ‘봉헌의 생애’였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그 봉헌의 절정이었고 완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루카 23,46).”

 

신앙인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또 예수님과 함께 ‘나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바치는 ‘봉헌의 생애’를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봉헌은 우리를(나를) 살리기 위한

 

일이었지만, 우리의(나의) 봉헌은 우리 자신이(나 자신이)

 

살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또 ‘예수님을 위해서’ 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구원과

 

생명을 위해서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봉헌’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렵든지 쉽든지 간에 살고 싶으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

 

즉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하게 되는 일입니다.

 

생색낼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2)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바치신 이야기는,

 

‘봉헌이란 무엇인가?’를 잘 나타냅니다.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마태 17,24-27)”

 

이 이야기에는, 예수님은 봉헌을 받는 위치에 계시는

 

분인데도 우리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분이라는

 

가르침도 들어 있고, 봉헌이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께 다시 드리는 일이라는 가르침도 들어 있습니다.

 

만일에 잡은 물고기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돈을 마련하고,

 

그 돈을 ‘성전 세’로 바쳤다면, ‘내가 노동해서 번 나의 돈’을

 

바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작은 기적’으로 마련된

 

돈을 바쳤으니,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께 바친

 

일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3)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봉헌을

 

‘어떻게’(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가를 잘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1-4)”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과부의 ‘마음’과 ‘정성’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정성은 ‘사랑’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전부 다 봉헌한 것은,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루카 10,27).

 

<사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없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즉 자신의 신심을 과시하려고 전 재산을 봉헌하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봉헌이 아니라 ‘위선’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마음속을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참 사랑’에는 ‘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바치는 일에서는,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전부 다 바치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사랑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형편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것을 바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일부만 바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인생을 마칠 때가 되면, 모든 것을(목숨을)

 

하느님께 돌려드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임종은 단순히 생을 마감하는 일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봉헌을 완성하는 일이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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