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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상상만 해도 무지 그리운 분이 계시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6-02-03 조회수76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하루 참 행복했습니다. 그제는 밤새 밤을 꼬빡 샜거던요. 그랬는데 어제 오전에 굿뉴스에 잠시 들어와 보니 댓글 하나를 보고 밤새 힘든 게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는 정보라고는 자매님이라는 것 하나와 존함 이것 외에 최근에 알게 된 사실, 바로 나이만 먹어 가는 무명의 노인네라고 하신 말씀 이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없는 분이십니다. 한 번도 뵙지도 못했고 또 어디 사시는지도 모릅니다. 베일 속에 가려져 더 궁금하긴 합니다. 어제 오전에 무척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다는데 밋밋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제가 그만 장난을 쳤습니다. 자매님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가 마치 어떤 여고생인 줄 착각하는 척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짓궂은 장난이었다고 바로 말씀드렸습니다. 무례하려고 한 게 아니라 잠시 깜짝 웃음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애교로 봐주십사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댓글을 보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댓글을 보지 않으셨다면 아직도 모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지금 자정을 넘어서 어제라고 하긴 합니다. 어제 오후에 개인 일을 보면서 이분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게 있습니다. 오늘 묵상글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도 그렇고 신앙 안에서 사람들과 같이 교류를 하면서도 그렇고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좋은 호감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신앙 안에서라고는 하지만 가능하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도 어쩔 수 없이 속으로는 꺼리지만 겉으론 신앙인이라는 명분으로 사랑 실천 때문에 억지로 참고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제 주일날에는 제가 제 본당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그랬습니다. 보통 만약 본당에서 미사를 한다면 식사를 주위 식당에서 하고 차를 같이 마십니다. 아니면 제가 다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에라면 연락을 해서 만납니다. 

 

주일 2시 조금 넘어서 단체 톡에 단장님이 올려주셨습니다. 오늘은 일찍 헤어졌다는 것과 함께 있는 사진을 같이 올려주시면서 저를 언급하시며 같이 함께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것입니다. 순간 울컥했습니다. 지금은 단장이시지만 이분은 제가 영세를 받고 나서부터 그땐 같은 레지오를 하지 않았고 그냥 성당에서 보는 그 정도의 사이었는데 어떻게 유심히 보셨는지 연세는 지금 최소 일흔 중반은 조금 넘어셨습니다. 이 위치에서 저를 특별히 아껴주시는 분입니다. 제 어머니 장례 때에도 그때 단장님이 부의를 하셨더군요.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금액을 떠나 사실 보통의 관례에 따르면 부의를 할 만큼의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한참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이 제가 성당에서 제일 어린 나이에서 본당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는 과정에서도 냉담을 하지 않고 힘들지만 잘 견디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가정에서 어머니를 마지막에 극적으로 장례미사까지 하게 돼 같은 교우지만 교우로서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기특한 친구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여기서 친구는 그냥 친구 그 의미가 아니라는 건 다 아시겠죠. 

 

저에게 댓글을 남겨주신 자매님, 제 본당 레지오 단장님 카톡 메시지 이 두 경우에서만 아니라 사람은 다 눈을 가지고 있고 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누구는 보고 누구는 보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처음에 자매님 같은 경우는 제 얼굴도 모르고 또 제가 어떤 모습인지도 전혀 모르십니다. 다만 제가 처음 글을 굿뉴스에 올린 이후부터 우연히 눈여겨보셨다는 것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굳이 말하면 저에 대한 정보라곤 굿뉴스에 올린 글에 나타난 그 내용에서만 유추할 수 있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실에서 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냥 언젠가는 글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돈도 되지 않는데 어떻게 남에게 작지만 도움이 되어드리려고 하는데 온갖 태클을 걸 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때 몇몇 분은 특히 이 자매님도 포함되지만 해외에 계신 어떤 분은 해외에 있기 때문에 신앙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데 그래서 굿뉴스에 들어와 위로를 받고 때로 힘을 얻어가려고 이용하는데 우연히 제 글을 보고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셔서 쉽게 포기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때 생각한 게 누군가 태클을 건다고 해도 또 누군가는 부족한 한 인간의 체험담이나 묵상글이 용기와 힘이 될 수 있다면 그 한 분을 위해서라도 작은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하자고 마음먹고 했던 것입니다. 

 

처음 굿뉴스에 제가 글을 올리게 된 계기도 가르멜 수도원 신부님이셨습니다. 1월말 관구회의를 마치고 그때 인사발령이 나기에 소식을 주셨는데 경북 성주 기도 공동체로 발령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마산으로 오시길 희망을 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전혀 모르는 자매님들을 생각하면 가끔 힘을 얻곤 합니다. 또 그분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그냥 상상만으로도 부족한 저를 위해 응원해 주신다고 하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저를 응원해 주신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얼마 전 쪽지에서도 자매님께서 보내주신 쪽지를 보면 쪽지 치고는 조금 길게 보내주셨지만 글 내용과 표현이 아주 담백하면서도 기품이 있으시고 정말 겸손이 묻어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세련미까지 갖추신 걸 보니 정말 무지무지 어떤 분이실까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댓글을 남겨주시니 더 반가웠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는 아주 단순한 일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이게 신앙 안에서는 서로 위로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를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오늘 새삼 또 느낍니다. 

 

저 멀리 원주교구에 계신 자매님이신데 그분은 제가 굿뉴스에서 활동하는 걸 모르실 겁니다. 원주교구민들과 함께 순례를 하며서 그간 지켜보고 제가 또 그 순례하시는 분들의 방인 카톡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올리는 글에서 질투는 아니지만 저를 많이 부러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한번은 순례 마치고 도중에 인근 식당에 형제님 두분 내외분이 저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원주교구 이영란 아네스 자매님이십니다. 전주교구에서도 이남희 엘리사벳 자매님이 계신데 엄청 저를 아껴주십니다. 한 번씩 기도 중에 저는 이분을 위해 화살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초남이 성지에서 거제 성당까지 300킬로 조금 넘는 길인 유섬이 유배길 순례를 같이 하면서 신앙 안에서 정이 많이 든 자매님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에도 전주교구 윤지충 바오로 압송로 길에서도 만나게 되면 동생처럼 아니면 조카처럼 살뜰하게 챙겨주시고 또 만나면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저는 그런 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 세상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예전에 순례할 때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베드로는 우리집에 재워줄 수 있다고 하시는데 저는 그 말씀이 저한테는 무지무지 행복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말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과연 제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요? 추측이 되시는지요? 바로 이겁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끈을 통해 지금도 이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서 알든지 모르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여기서뿐만 아니라 각각 자신의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로부터서라도 자신을 누군가가 떠올리게 된다면 제가 어제 저에게 댓글을 남겨주셨던 무명의 노인네라고 하신 자매님을 상상하면 행복했던 것처럼 그렇게 누군가도 자신을 생각하게 되면 이처럼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될 수 있는 그런 신앙인이 된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일까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왜 복된 사람일까요? 

 

자신을 누군가 생각만해도 그 어떤 누군가가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신앙 안에서 이런 아름다운 형제애를 나눈다면 하느님도 축복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때문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건 형제와 자매라는 성별도 초월할 수도 있고요 또 나이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우린 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따라가는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형제자매로 되면 그 모습에 흐뭇해하실 하느님 모습을 떠올려보게 되면 그렇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마음속에서 솟구쳐오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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