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생활묵상 : 예고 없는 작별 | |||
|---|---|---|---|---|
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6-02-04 | 조회수10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누구나 언젠가는 지구별을 떠나 멀고 먼 하늘나라를 가게 됩니다. 어제 부고 하나를 레지오 톡을 통해 받았습니다. 저는 특별한 몇 분을 제외하고는 본당에 계신 자매님과 형제님들 중에 세례명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저는 제 이름과 세례명을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만약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다들 잘 알고 계십니다. 영세를 받기 전부터 교리를 한 달 정도 받을 때에도 이미 스타 아닌 스타였으니 말입니다. 예비자인데도 그랬습니다. 부고를 받았는데 어떤 분인지 잘 몰라 연령회 봉사하시는 자매님 한 분께 전화로 여쭤봤습니다. 인상착의를 말씀해 주셨는데 머리가 백발이신 것만 말씀하셨습니다. 짐작이 가는 자매님이었지만 그래도 정정하신 분이라 설마했는데 저는 오늘 개인적인 일로 혹시 빈소에 못 갈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서 밤 11시쯤에 혼자 갔는데 병원 입구에 사진을 보니 설마했는데 예상했던 분이어서 너무 놀라웠습니다. 교적을 옮긴 후에도 간간이 본당을 갔기 때문에 뵐 수 있었습니다. 항상 저를 보면 밝게 인사를 해 주시고 또 근 13년을 뵈면서 평일 미사는 거의 빠지지 않고 오실 정도로 신심이 아주 좋았던 분이십니다.
연세를 보니 일흔 여덟이셨습니다. 헤어스타일이 전체가 완전 흰 백발이셨고 파마 머리였습니다. 피부가 참 고우셨고 탄력이 연세에 비해 좋으셨습니다. 백발이어도 염색을 한 것보다도 더 곱게 보이는 그런 얼굴이셨습니다. 허리도 아주 꼿꼿하고 또 건강해보이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작별을 할 거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잘 모르는 자매님이었다면 어쩌면 시간도 너무 늦고 해서 그냥 목요일 오전에 장례미사 때만 참석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평소 잘 아는 자매님이라 늦었지만 오늘 개인적인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혼자 짧은 연도만 바치며 자매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고 왔습니다. 귀가하면서 묵상을 한 게 있습니다. 14년 성당에서 생활하면서 연도는 거의 빠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장례미사는 조금 빠졌기는 합니다.
원래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연도와 장례미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가능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신영세자 때부터 마음먹었거던요. 잘 아는 분이든지 아니면 모르는 분이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개신교 때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개신교 땐 이런 게 조금 두려웠습니다. 근데 천주교에 와서는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입관도 많이 지켜봤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은 이걸 생각보다 많이 꺼려하십니다. 실제 염습을 할 때도 젊다 보니 도와드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하느님 나라로 가시는 걸 봤습니다. 화장장까지도 많이 가서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어떤 경우는 장지까지도 함께했습니다.
많은 분들을 보내드리면서 항상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위령성월 때에만 주로 죽음을 많이 묵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물론 그때도 많이 묵상해야 하겠지만 죽음이라는 건 언제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죽음을 머릿속 가운데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연도를 마치고 나서면서 아드님으로 보이시는 분께 여쭤봤습니다. 지금 잠시 본당을 나오지는 않지만 간혹 뵙는데 생각 의외로 이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고 하니 아마도 편의상 말씀을 하시는데 지병이 있었다고 하셨지만 최근까지 그렇게 보인 적은 없어 보였는데 조금은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난 가을엔 성당 근처에서 마주쳤을 때 언제 다시 올거냐고 하셔서 제가 앞으로 14개월만 지나면 갈 거라고 했는데 그땐 자주 뵐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생각으로는 최소한 10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속 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강해보였는데 이렇게 작별을 할지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성당에 와서 많은 죽음을 보아왔지만 오늘은 특별한 묵상을 한 게 있습니다. 이처럼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이별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외 다른 종교에서는 특별히 죽음에 대해 남은 가족이나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과 고인과의 어떤 관계에서 장례에서 간혹 언급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잘 하지 않는데 고별식을 할 때 약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바로 고인과 고인 가족이라든지 아니면 고인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평소에 고인과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경우에 서로 용서를 청하는 것 말입니다.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친하든 친하지 않든 많은 교류를 하거나 친분을 쌓기도 합니다.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서로 마음을 틀 수 있는 그런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먹서먹하며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경우는 많은 세월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 어떤 경우는 불과 스쳐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표현할 만큼 짧은 시간을 함께할 때도 있습니다.
불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정도의 인연은 몇 천 갑절뿐만 아니라 억겁의 세월을 함께한 인연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물론 불교의 표현이지만 그 표현을 떠나 우리는 그와 맺었던 인연이야 어찌됐든 지금 현세에서 헤어졌다고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니고 다시 언젠간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만났을 때 친한 사이이면 모르는데 만약 평소에 서로 서먹서먹한 관계였다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요? 아직 가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모르긴 몰라도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게 이상할 겁니다.
이 상황을 유심히 한번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상황이 하늘나라에서 연출이 된다면 그게 과연 하늘나라라고 하는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건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천국은 그런 감정이 존재할 수조차도 없는 곳이 되어야 진정한 천국이라고 하는 게 정상일 겁니다. 그럼 어떤 결론이 나는가요? 우리는 죽어서 하느님 나라를 간다고 많이들 생각을 합니다.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 수정보완해서 인식해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조금 전 설명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하면 결코 죽어서 하느님 나라를 설령 간다고 해도 그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상낙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죽어서 하늘나라를 잘 가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늘나라를 만끽해야 다음에 우리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천국에 잘 안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잘 안착하는 건 한 인간의 생명이 어머니 태안에 잘 착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착상이 잘 됐을 때 그게 한 생명으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갈 때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착상조차도 못하면 우리의 영혼인 새 생명이 하느님 나라에서 그만 유산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해집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유산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유산이라는 표현은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이런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서 잘 적응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영혼은 천국에 가도 그에게는 천국이 아닌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모순 같지 않습니까?
천국에 갔는데 천국이 아니니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결론을 내립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 본 사람만이 천국에 쉽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죽는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에 대한 해답은 이미 제가 쓴 이 묵상글에서 힌트가 다 녹아 있습니다. 저도 이 묵상이 정말 맞을지 그게 참 궁금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과 성경에서 이미 이걸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을 달리 했을 뿐이지 원리는 바로 이런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평소 잘 와 닿지 않는 말씀도 잘 이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잘 와 닿지 않는 이유가 바로 천국이라는 나라의 법은 이 세상 법으로는 설명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하늘나라 시민이 되려면 그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요건이 잘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천국 시민권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시민권은 천국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고 이미 이 세상에서 획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이 세상을 그냥 허투루 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천국을 그리 만만하게 보면 안 될 것입니다. 그냥 대충 대충 살아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더 하고 싶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도 너무 길어서 여기서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언제가 또 다른 글에서 언급하겠습니다.
제 묵상글을 보시는 분들은 항상 긴 글일 거라고 예상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글은 길긴 긴데 다 읽고 보면 단일한 주제로만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결론이 명쾌하게 하나로 돼 가슴에 진하게 다가가 잘 스며들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긴 글을 읽어내는 인내가 필요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