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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5일 수원 교구 묵상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6-02-05 조회수96 추천수1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시험 파견

 

앞서 사도 명단에 관한 복음 말씀에서 살펴보았듯이(마르 3,13-19), 예수님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불러” 열둘을 세우시고 “사도”라 이름하셨습니다. 부르심의 목적은 우선,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늘 곁에 두시어, 그들이 당신의 말씀을 직접 두 귀로 듣게 하고, 당신의 행적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하십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본 것을 전하며, 지상 교회를 맡아 구원사업을 이어나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심’입니다.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보게 하신 것은, 있는 그대로 전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끝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심’입니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마귀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존재, 그분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걷도록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 하느님 나라에서는 영원히 사라져야 할 존재입니다. 사도들에게 이 권한을 주셨다 함은, 성자께서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야 할 교회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자격을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지금까지 늘 곁에 두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쳐왔던 제자들을 일차적으로 시험 파견하시며, 파견 지침을 내리십니다. 물론 궁극적인 파견은 성령강림을 통한 교회 창립 때 완성될 것이나, 그 지침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먼저, 꼭 필요한 지팡이와 신발과 옷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흔히 길을 떠날 때는, 여행의 결과는 준비과정에 달려 있다 할 정도로, 준비에 최선을 다하게 마련인데, 주님은 오히려 비움과 가난을 강조하십니다. 한마디로, ‘여행 보따리’가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여행 보따리는 자기 고유의 세계를 고집하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내가 어떠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의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자랑하도록 유혹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나’라는 인간을 통해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파견된 이들의 ‘나’에는 파견하신 분의 가르침과 정신이 담겨 있을 뿐이니, 파견하신 분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선교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내다보시며,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려라” 하는 지침을 덧붙이십니다. 경고 또는 단절과 결별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해 보여도, 선교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할 사도들에게 이 말씀은 또한 미련과 아쉬움 털어버리고 용기 내어 다시 시작하라는, 다시 걸어가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인간적으로는, “너희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허망하거나 야속하기만 할 수 있어도, 그렇다고 선교의 길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가톨릭교회의 존재 목적, 이 교회에 몸담고 있는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운 교회에 우리를 불러 주시고, 언제 어디서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누도록 우리를 초대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내가 가지고 있거나 쌓아 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담아주신 말씀과 정신을 벗 삼아 만나는 모든 이에게 신앙의 기쁨을 전하는, 그것도 용기 내어 힘차게 전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열두 제자의 파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복음을 전하는 삶의 본질을 보여주신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8절) 떠나라고 하신다. 이는 단순히 소박한 여행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 선포의 힘은 인간적 수단이나 재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능력과 섭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팡이 하나와 신발 한 켤레 외에는 여벌 옷조차 허락하지 않으신다. 이는 그들이 철저히 하느님을 신뢰하며, 복음을 전하는 길에서 불필요한 집착을 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 “복음을 전하는 이는 세속적 무기를 내려놓고,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Hom. in Ev. 17,3). 우리의 힘은 준비된 재산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서 나온다. 

 

제자들은 머무를 집을 선택할 때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라고 하셨다(10절). 이는 관계의 충실함과 공동체적 신뢰를 드러내는 자세다. 반대로 거절당할 때 먼지를 털어버리라는 행위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하느님을 거절하는 자에게 닥칠 심판의 상징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복음을 거절하는 이는 선포자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하느님을 거절하는 것이다.”(In Matth. Hom. 33,2). 

 

마르코 복음은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를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고쳐주었다고 전한다(12-13절). 이는 복음 선포가 단순한 말의 전달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능력이 드러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교리서도 강조한다. “사도적 선포는 말과 행동, 표징과 기적, 특히 삶의 증거로 이루어진다.”(854항). 

 

우리도 세례와 견진을 통해 파견된 제자들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보여주는 하느님 모상의 삶이다. 우리가 가난한 마음으로 살 때, 복음은 힘을 가진다. 우리가 이웃을 환대하고 용서할 때, 하느님 나라는 드러납니다. 우리가 삶의 증언으로 복음을 살아낼 때, 세상은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 

 

오늘 주님은 우리 각자를 부르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파견한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나만 의지하여라.” 우리의 삶이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살아있는 복음이 되어, 우리가 머무는 자리마다 하느님의 나라가 드러나기를 기도하자. 아멘! 

 

이병우 신부님_"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6,7) 

 

'예수님을, 복음을 몸에 지니자!' 

 

오늘 복음(마르6,7-13)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둘씩 짝지어 세상 안으로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이르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마르6,8)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들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자들을 고쳐 줍니다. 

 

오늘 복음인 '파견사화'는 이천여 년 전에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이르신 말씀이지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신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생태계의 주보성인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나병 환자와의 결정적 만남을 통해 완전한 회개의 길을 걸어가신 성 프란치스코의 주된 바람과 목적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바람대로 예수님을, 복음을 몸에 지니고 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본질'입니다. 

 

오늘은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쓰신 성녀 아가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모든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착함과 선이신 주님 안에서 영과 육이 함께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가타에게,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영성체 후 기도)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쓰신 성녀 아가타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마카7,38)

 

송영진 신부님_<선교활동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7-13).”

 

 

 

1) 선교활동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직 구원을 못 받은 사람을

 

인도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나, 복음을 전해 듣는 사람이나

 

모두 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선교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9,22ㄴ-23).”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5-27).”

 

여기서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는, “나도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다.”이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는, “나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고

 

탈락자가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처럼 잘난 체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충실하게 ‘구원의 길’을 잘 걷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즉 내가 먼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루카 6,39)”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잘 걸어가고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2) 선교활동은 ‘섬김’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께서 구원의 대상인 우리를

 

섬기신 것처럼(루카 22,27), 그렇게 우리도 ‘섬김’을

 

실천함으로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고압적인 태도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상대방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해도 안 됩니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열두 사도가 바오로 사도를 무시하지 않았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고 더 오래 했다면,

 

그만큼 더 성덕을 쌓아서 남들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신앙생활에서 선후배를 따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교만입니다.>

 

 

 

3)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빈손’으로

 

가라고 지시하신 것은, 돌아올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하신 것과 같습니다.

 

선교활동은 장사도 아니고 영업도 아닙니다.

 

물질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교활동은 ‘구원의 은총’을(복음을) 전해 주는 일이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또 ‘섬김’과 ‘형제애’를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대가를 받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마태 10,8).

 

바오로 사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라고 말합니다(1티모 6,8).

 

그런데 ‘빈손’으로 가라는 지시 때문에

 

먹는 문제를 걱정한 제자가 몇 명은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 10,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은 당신의 일꾼을 당연히 먹이시는

 

분이니 먹는 문제를 걱정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4) 예수님의 지시에 대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도

 

걱정이 없을 수 없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걱정되니까 신앙생활을 한다.”로......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많고, 그런 일들 때문에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긴 한데......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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