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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7일 수원 교구 묵상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6-02-07 조회수52 추천수2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쉼이 없는 선교 활동

 

예수님은 본격적인 구원사업에 접어드시면서 제일 먼저 당신의 협조자 열둘을 뽑아 ‘사도’ 곧 ‘파견된 이’라 이름하시고, 말씀과 행적으로 정성껏 가르치신 다음, 시험 삼아 이들을 파견하시며 파견 지침을 내리신 바 있습니다(엊그제 복음). 사실 이 파견은 그야말로 일차적인 시험 파견으로서, 훗날 당신이 지상생활을 마치시고 떠나신 다음 펼쳐질 궁극적인 파견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험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합니다.” 분명 이들은 파견되기 전까지 직접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본 스승의 가르침과 행적을 전하며, 그 가르침과 행적을 몸소 실천하고자 애썼을 것입니다. 물론 보람과 성과도 있었겠지만, 거부와 반대, 비웃음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며, 이를 통해 복음 전파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체험했을 것입니다. 의기소침한 적도,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화가 치밀어 오른 적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그때마다 스승이 보여주셨던 모습을 떠올리며 힘과 용기를 내거나 평정을 되찾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험 파견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사도들, 파견된 이로써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 사도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는 말씀을 내리십니다. 시험 파견에서 체험했던 바를 조용히 정리하고 반성하는 차원의 시간도 시간이지만,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쉼의 시간, 재충전의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과업을 수행하든지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한 주간 생업에 종사하고 또 다른 한 주간을 맞이하기에 앞서 쉼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쉼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선편을 이용하여 외딴곳을 찾아 나서지만, 많은 사람이 먼저 그곳에 다다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파견된 이들’인 사도들의 시선은 다시 한번 ‘파견하신 분’에게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으로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그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십니다.” 사도들이 기대하던 쉼의 시간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견하신 분의 모습을 보면, 문자 그대로의 쉼이 아니라 “가엾은 마음”을 다시금 갖추고 “목자 없는 양들”을 위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쉼의 진정한 의미임을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 선교의 길에서 돌아온 사도들보다는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군중에게 쏠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이어 그분이 맡겨주신 구원사업을 펼쳐나가면서, 사도들은 파견하신 분의 이 마음을 늘 마음에 새기며 쉼 없이 말씀 선포의 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이 먼저 보여주셨고 사도들이 그대로 간직해나간 그 ‘가엾은 마음’을 바탕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 포기와 체념을 반복하고 있는 주위를 살피며, 그들이 힘과 용기를 내어 신앙이 주는 참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성원하는, 뿌듯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르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잠시 쉬려 하셨지만,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군중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장면을 들려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31절) 하고 말씀하신다. 이는 단순한 신체적 휴식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영혼이 회복되는 쉼을 뜻한다. 기도 속에서, 성체 앞에서, 성경 말씀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 안에서 쉬어라. 그러면 네 피곤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Confessiones, IV,12). “주님, 당신을 위하여 저희를 만드셨으니,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하기 전에는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Confessiones I,1) 

 

그러나 동시에 신앙인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봉사도 외면할 수 없다. 기도와 봉사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 몸의 두 날개와 같다. 기도 없이 하는 봉사는 쉽게 메말라 버리고, 봉사 없는 기도는 자기 안에 갇혀버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34절) 한다. 이는 하느님의 마음이 드러난 순간이다. 목자 없는 양은 굶주리고 길을 잃고 맹수에게 위협받는다. 예수님은 바로 그들을 돌보는 착한 목자이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병든 자들을 고치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시며, 그들의 영혼을 가르침으로 기르신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신다.” (Homiliae in Matthaeum, 50,3) 교황 프란치스코도 교회 목자들에게 자주 강조한다. “목자는 양의 냄새를 풍겨야 한다.” 이는 곧 백성과 가까이하며, 그들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라는 초대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 쫓겨 기도할 시간조차 잃어버릴 때가 많다. 그러나 잠시라도 주님 앞에 머무르며 숨 고르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활동은 점차 힘을 잃게 된다. 반대로, 기도 안에서 힘을 얻는다면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나눌 수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로운 복음화”를 말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현대인이 증거자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교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자비를 체험한 증거자”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친다. 첫째, 주님과 함께하는 조용한 시간 없이는 참된 사도직도 없다는 것. 둘째, 그 기도에서 얻은 힘으로 우리는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와 봉사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마르6,34) 

 

'예수님 마음으로 돌아가자!' 

 

오늘 복음(마르6,30-34)은 '예수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빵의 기적인 오병이어의 기적은 너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전해진 기적입니다. 너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가엾은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로 몰려오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약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너를 바라보고, 피조물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행동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미사와 기도와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되려고, 미사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거짓 신자입니다. 

 

오늘 독서(1열왕3,4-13)에서 솔로몬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3,5ㄴ)는 하느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 주 저의 하느님, ...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3,6-9) 

 

언제나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 안에 가득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도 솔로몬처럼 하느님의 지혜와 분별력을 청합시다! 예수님의 마음을 청합시다!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의 주 원인은, 그 본질은, 너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고, 내가 예수님의 마음이 되지 않은 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회개란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1마카7,52)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에게는 신앙생활 자체가 피정이고 안식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마르 6,30-34).”

 

 

 

1) 앞의 6장 6절ㄴ-13절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 6,6ㄴ-7).”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2-13).”

 

제자들의 활동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환대만 받은 것은 아닐 것이고,

 

미움과 박해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지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돌아와서도 편하게 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음식을 잡수실 겨를조차 없이

 

일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라는

 

말씀에서 ‘피정’이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피정’은 외딴곳에서 고요히 쉬면서

 

‘영적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피정에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세속에서 묻은 ‘오염물’을 씻어내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세속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이지만,

 

세속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의 여러 가지 것들에게 오염됩니다.

 

그 오염된 것들을 씻어내고 영적인 깨끗함을 회복하는 것도

 

피정의 중요 목적에 포함됩니다.

 

사실 오염된 채로 있으면서 영적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는

 

없기 때문에, 피정에는 항상 고해성사가 포함됩니다.

 

 

 

2) 복음서의 표현만 보면, 쉬려고 ‘외딴곳으로’ 갔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계획은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빈말’을 하신 셈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빈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따라서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라는

 

말씀은 ‘빈말’이나 ‘헛된 말’이 된 것이 아니라,

 

실현된 말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실현되었을까?

 

 

 

3) 우선 먼저, 예수님께 몰려든 사람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휴식을 방해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도 ‘참된 안식’을 얻으려고 온 사람들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목자 없는 양들’ 같았던 그 사람들은, ‘참 목자’를 찾아온

 

사람들이고, 그들을 가엾게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듣는 시간이 사람들에게는 ‘참된 안식’을

 

누리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 가르침에서

 

‘새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바로 뒤에 이어진 ‘빵의 기적’도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제자들은 따로 떨어져서

 

자기들끼리만 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함께

 

들었을 것이고, 그 가르침에서 ‘참된 안식’과

 

‘새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예수님만 쉬시지 못하고 일을 하신

 

것이 되는데,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예수님도 그 일을

 

통해서 안식을 얻으셨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2.34).”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양식’을 ‘안식’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4) 신앙생활은 그 자체로 피정이고, 안식입니다.

 

실제로 외딴곳에서 피정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평소에 참여하는 모든 전례와

 

늘 바치는 모든 기도가 다 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에 미사나 기도를 ‘일’이라고(‘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은총’을 ‘멍에’로 오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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