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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8일 수원 묵상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6-02-08 조회수50 추천수1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소금과 빛

[말씀]

■ 제1독서(이사 58,7-10)

 

바빌론 유배시기 동안 익명의 예언자 제2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가져다줄 메시아를 예고합니다. 이 메시아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속죄의 길을 걸어갈 것이나, 아울러 이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봉사 정신을 나누어 가질 것을 촉구합니다. 봉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맡기신 사명에 제대로 답할 수 있고, 이로써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제2독서(1코린 2,1-5)

 

그리스의 중심 도시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토론할 때, 사도 바오로는 그들의 수준에서 논쟁을 벌였으나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한계를 절감하고서 이제 십자가에 대해서만 말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의 신비를 밝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약했던, 두려움에 떨었던 자신이 선교활동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힘에 의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 복음(마태 5,13-16)

 

마태오는 오늘 말씀에 앞서 (지난 주일 복음에서) ‘하늘나라의 헌장’이라 할 수 있는 ‘참 행복의 길’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 나라를 올바로 증언하는 데 관한 헌장이 발표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자기의 삶을 통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을 보게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이 증언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별 영향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 그 진실성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새김]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세례성사와 함께 복음 전파 사명을 부여받으며, 이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 사명이란 것이 교회의 기존 제도를 알리는 데 급급하거나, 신자로서 지켜야 할 규정을 강조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할 경우 아무리 교회의 이름으로 포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명은 매우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도나 규정은 그 다음의 문제, 곧 각론(各論)은 될 수 있어도, 총론(總論)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먼저일까요?

 

그 답을 오늘 주님의 말씀 속에서 찾습니다. 주님은 마치 ‘우리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응답하시듯, 신앙인으로서의 우리의 신원을 분명하게 밝혀주십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공통으로 ‘봉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거나 썩는 것을 막아 주며, 빛은 어둠을 거둬내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소금과 빛이 되어 살맛을 잃어가는 세상에 생기를 북돋워 주고, 길을 잃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제2독서)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헐벗고 “굶주린 이들”,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준다면 “우리의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우리에게는 대낮처럼 될 것입니다”(제1독서).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주제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이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명료하게 다가오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패를 막아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소금과, 세상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밝혀 누구나 밝은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빛으로서의 삶이야말로,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제대로 따라 사는 섬김의 삶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모자람이 없도록 조금 더 기도하고 조금 더 희생하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5,13-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1. 소금과 빛으로 부르심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존재 자체를 “소금”과 “빛”으로 규정하심을 보여준다. 제자는 단순히 어떤 역할을 맡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본질적으로 맛을 내고, 길을 비추는 사람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빛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비추고, 소금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썩지 않도록 다른 것을 보존한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한다.”(Homilia in Matthaeum 15,6) 즉, 제자들의 존재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봉사적 존재라는 것이다. 

 

2. 행실을 통한 증거

예수님은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16절)라고 하신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실로 드러나는 신앙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빛은 너희의 행실이다.”(Sermo 53,6) 그리스도인은 말보다 삶으로써 세상을 비추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연결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고, 불쌍한 이들을 네 집에 들이면, 네 빛이 새벽빛처럼 솟아오를 것이다.”(이사 58,7-8)라고 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빛을 드러낸다. 

 

3. 교회의 사명: 세상의 빛

교회가 세상 안에서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곧 선교적 사명을 의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세상에 봉사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드러내는 보편적 성사”(교회 48)라고 가르친다. 교회의 모든 존재 이유는 세상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데 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코린토 신자들에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하였다.”(1코린 2,2) 고백한다. 교회의 빛은 화려한 언변이나 인간적 힘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사랑에서 나온다. 십자가의 나약함 안에 담긴 하느님의 능력(1코린 2,4)이야말로 교회가 세상에 비추어야 할 가장 큰 빛이다. 

 

4. 우리의 삶 안에서

오늘 복음은 우리 각자에게 묻는다. 나는 내 삶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소금처럼 평범한 일상 안에서 작은 사랑을 나누고, 기쁨과 이해를 전하며, 세상을 보존하고 있는가? 빛처럼 어둠 속에서 꺼지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한 길잡이가 되고 있는가?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처럼,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여라.”(In Epistulam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7,8) 사랑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삶은 이미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5. 결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맛을 지켜내는 소금이며, 세상을 밝혀주는 빛입니다. 그 존재 자체가 다른 이를 위한 것이며, 사랑으로 드러나는 삶을 통해 하느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도 다짐해야 합니다. 교회의 참된 모습은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교회, 즉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산 위에 있는 마을처럼 세상이 볼 수 있는 증거가 될 것이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병우 신부님_'복음화의 참의미!' 

 

오늘 복음(마태5,13-16)은 '세상의 소금과 빛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3-16) 

 

그렇습니다.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따라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내는데 있어서 절대적 재료입니다.

빛은 어둠을 밝혀줍니다. 어둠을 몰아냅니다.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복음화의 참의미!'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게 하는 것, 세상 안에 예수님이 자리 잡게 하는 것, 세상 안에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넘쳐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 사명인 복음화'입니다. 

 

'복음화의 시작'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먼저 '복음이 되는 복음화'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지금 여기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화의 본질'이요, '복음화의 참의미'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2,2) 

 

(~ 1마카8,16)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답게 사는 것이 곧 ‘소금과 빛답게’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3-16).”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라는 명령인데, 아직 소금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소금답게 살아라.”

 

라고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신앙인은 ‘이미’ 소금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이 ‘소금답게’, 또는 ‘소금으로서’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이고, 이 말씀도 이미 빛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빛답게 살아라.” 라고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신앙인이 ‘소금답게’ 살지 않으면, 그것은 ‘제 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밖에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아무 쓸모가 없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에도, 이웃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에도,

 

또 자기 자신이 구원을 받는 일에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함지 속에 감춘 등불은 빛을 내지 않는 등불인데,

 

그것도 역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고,

 

밖에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2)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이라는 말은,

 

이사야서 2장 2절-3절에서 온 말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이사 2,2-3).”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종말의 새 예루살렘’을

 

상징하기도 하고, ‘피난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감추어질 수 없다.”는, “감추지 마라.” 라는 명령입니다.

 

교회는, 또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또는 주님의 집으로 인도하는 ‘등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여기서 ‘착한 행실’은 ‘신앙인답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기본이고, 삶 자체가 신앙을 증언하고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켜라.”,

 

즉 “신앙인으로 변화시켜라.”입니다.

 

 

 

3) ‘소금답게’, 또 ‘빛답게’ 사는 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신앙인답게’ 사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거창한 일도 아니고,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이미 많은 신앙인이 그렇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소금과 빛’의 좋은 모범은 초대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그런데 초대교회 공동체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 좋은 일도 생겼습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6,1).”

 

홀대하지 않았는데도 홀대받았다고 불평한 것은 아닌 것

 

같고, 히브리계 과부들은 조금 더 받고, 그리스계 과부들은

 

상대적으로 덜 받는 차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차별과 불평이 생기면, 그것은 갈등과 분열로 이어지게

 

됩니다. 공동체가 깨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그런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면, 그 교회는 ‘제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버리고, ‘꺼진 등불’이 되어버립니다.>

 

 

 

4) 모든 신앙인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신앙인답게 산다면,

 

즉 신앙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다 하고, 하면 안 되는

 

일은 안 하면서 산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자기가(자기도) 신앙인이라고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당선된 후의 모습을 보면,

 

전혀 신앙인답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려면,

 

우선 먼저 신앙인답게 잘 살고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추는 경우에는, 신앙인답게 사는

 

것을 포기한 것과 같기 때문에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무슨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추는 것도 아닌데, 주일미사 참례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할 수 있는데도, 신앙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도

 

안 하는 것은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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