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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 2월 16일 묵상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6-02-16 조회수26 추천수3 반대(0) 신고

김건태 신부님_표징과 믿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다시 만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교 분파로, 정치적 세력인 헤로데 당원과 열혈당원 이외에,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와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쿰란 공동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에세네파를 구별합니다. 그 가운데 ‘분리된 자들’이라는 의미의 바리사이들은 율법과 전통에 충실했던 사람들로서, 그러하지 않은 사람들과 분리된 자들로 자처했습니다. 율법과 전통에 대한 집착으로 편협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지만, 대중들로부터는 상당한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었고, 그래서 지도자적인 위치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들은 부활 사상과 영혼의 불멸, 천사 또는 악령과 같은 영적인 존재를 받아들였으나, 사두가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마르 12,18; 사도 23,18 참조).

 

이들 바리사이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그들이 권위를 갖고 가르쳐오고 온 힘을 다해 실천해 온 율법과 전통을 무시하거나 깨뜨리시는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고 영향력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그분께 적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오늘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여기에서의 ‘시험’은 악의를 품고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 사업에 뛰어드시면서, 그동안 수차에 거쳐 기적을 통한 표징들을 보여주셨음에도,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은 믿음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앞서서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6,30-44),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배부르게 하셨음에도(8,1-10),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그 옛날 광야에서의 만나처럼, 하늘에서 표징이 주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로 보이나, 실은 믿음이 없음에 대한 증표, 완고한 마음의 표현일 뿐입니다. 믿음이 없는 바리사이들을 향하여, 어떠한 표징이 주어진다 해도 믿음의 기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고한 마음의 소유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감정이 “깊은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감정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아니 듣지 않으려 하고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표징은 없던 믿음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있는 믿음을 다져줄 뿐입니다! 따라서 믿음만 있다면, 다시 말해서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와 바르게 볼 수 있는 눈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표징은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바로 좋은 표징들입니다. 마음을 열어 사람들을 만나고, 정성을 다해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가운데, 우리의 가톨릭 신앙을 더욱 다지고 펼쳐나가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아울러 이번 설 명절 연휴도 그러한 하루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기적을 요구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을 요구한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12절) 바리사이들의 요구는 단순한 호기심보다도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교만한 태도였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수많은 치유와 빵의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와 욕망에 맞는 ‘권력의 증거’, 곧 로마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높여줄 정치적 표징을 요구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믿음의 부족을 드러내며, 그것은 곧 하느님의 뜻을 시험하는 태도이다.”(Homilia in Matthaeum 43,3) 믿음은 외적 기적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과 내적 회개에서 자라난다. 

 

예수님께서 거부하신 이유는 분명하다. 이미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가장 큰 표징은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하는 결정적 기적이다. 성 바오로 사도도 말한다. “유다인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힘이요 지혜입니다.”(1코린 1,22-24) 즉, 세상이 어리석음으로 보는 십자가가 바로 하느님의 표징이자 구원의 길이다.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그분의 메시지를 확증하는 표징들이지만, 그분 자신이야말로 참된 표징이시다.”(547항 참조) 또한 교회는,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회개와 성화의 열매야말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적이라고 가르친다(1431항 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너는 큰 기적을 찾고 있느냐? 너 자신이 변화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Sermo 29,2)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마음이 완고함에서 풀려 하느님께 열리고, 용서할 수 없던 이를 용서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변화이다. 

 

우리는 종종 바리사이들처럼 눈에 보이는 기적만을 청하곤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 회개, 사랑의 실천을 통해 가장 큰 기적을 일으키신다. 내가 변할 때, 가정이 변하고, 공동체가 변하며, 세상도 변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는 어떤 기적을 청하고 있느냐?” 세속적인 부와 안락을 위한 기적인가, 아니면 내 안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적인가? 

 

우리가 청해야 할 기적은 십자가를 통해 이미 주어진 구원,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내적 회개의 은총이다. 표징을 찾는 대신, 우리 자신이 주님 안에서 표징이 되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증거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병우 신부님_"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마르8,12ㄴ) 

 

'단순한 믿음이 필요한 때!' 

 

오늘 복음(마르8,11-13)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8,12)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메시아(Messiah)'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에 히브리어로서,  '구세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아 사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지배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강한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한 논쟁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 인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강한 힘을 지닌 메시아인지에 대한 요구이자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요구와 시험을 거부하십니다.

 

이 거부가 우리에게 필요한 '단순한 믿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야고1,2-3)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1,6ㄴ-7) 

 

달갑지 않은 크고 작은 고통과 시련과 불편함 앞에서 우리의 민낯인 진짜가 드러납니다. 정말 믿는지, 사랑하는지가 드러납니다. 단순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들의 믿음과 신앙생활 자체가 표징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마르 8,11-13).”

 

 

 

1)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한

 

것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싶어서 한 요구가 아니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또 믿기 싫어서 한 요구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짜 메시아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어떤 표징을

 

보여 주시면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셨다면,

 

그들은 또다시 그 표징은 가짜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를 거절하신 것은,

 

그 요구는 들어줄 가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단식기도를 하셨을 때,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했던 사탄도 예수님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 4,3).”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마태 4,6).”

 

사탄의 요구는 바리사이들의 요구와 같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요구는 ‘사탄의 유혹’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사람들은 다시 예수님께 그런 요구를 했습니다.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마태 27,39-44).”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그런 요구에 시달리는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을 안 믿은 자들만 그런 요구를 한 것은 아니고,

 

믿고 따른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표현으로는, ‘주님이시거든’이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사탄의 말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 사탄과는 다르게 ‘믿고 싶어서’ 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 주셨는데(마태 14,29),

 

베드로 사도는 물 위를 조금 걷다가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두려워져서 그만 물에 빠졌습니다(마태 14,30).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꾸짖으셨습니다(마태 14,31).

 

이 말씀은, ‘주님이시거든’이라는 말과 물 위를 걷고

 

싶어 한 것을 모두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주님이시거든’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고, 하면 안 됩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 제자라면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을 배 안에서 맞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청을 들어 주신 것은,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게 하려고”로 해석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조금 걷다가 물에 빠진 것은,

 

예수님의 권능 덕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한 일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4) 사도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게 된 것은, 또는

 

믿음이 완성 단계에 도달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큰 표징이고, 가장 중요한 표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사도들의(교회의) 증언을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처럼 개인적으로 어떤 특별한 체험을

 

했기 때문에 믿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신앙인들의 ‘믿음’과 ‘신앙생활’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명하는 표징이 됩니다.

 

<표징이 될 수 있도록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순교자들의 믿음과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예수님을 증명하는 강력한 표징입니다.>

 

 

 

5) 사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또는 그들의

 

논리대로 예수님을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안 믿는 자들과 안 믿으려고 하는 자들은

 

‘우연의 일치’ 라고 주장하거나,

 

어떻게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기적 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은

 

진짜 표징을 보아도 그냥 부정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의 믿음과 신앙생활 자체가

 

표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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